차상위계층이 된 날, 나는 조금 부자가 되었다

2026. 04. 21by기록하는비꽃

차상위계층이란 경제적으로 최하위 계층과 비슷하거나 약간 더 나은 계층. 근로 능력과 약간의 고정 재산이 있어서 소득이 최저 생계비를 초과하므로 기초 생활 수급자로서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잠재적 빈곤층이다. (네이버 어학사전)

 

누군가에게는 움츠러들게 하는 말일 수도, 또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단어일 수도 있는 이 낱말이 적어도 우리 가족에게만큼은 감사가 되었다. 임대주택 입주 자격에 조금이나마 유리한 조건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국에서의 정착 과정을 아는 지인들은 하나같이 마냥 반가운 소식은 아닌데, 그래도 축하해주고 싶다며 연락을 해왔다. 또 누군가는 우스갯소리로 꽃다발을 들고 복지사의 마음으로 방문하겠다고 했다. 그 어떤 말도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부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할까. 지금의 형편 또한 언젠가를 향해 지나가는 과정이라 여겨졌다. 반지하이면 어떻고, 곰팡이가 조금 핀 집이면 또 어떠한가. 형편에 맞게 살아가는 삶, 그것이 결국 내가 살아내야 할 삶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했다.

 

이십 대의 나는 아주 작은 실수에도 쉽게 도망치던 사람이었다. 잘못될 것 같으면 그 자리를 피하기에 바빴고, 조금만 아니다 싶으면 자리를 옮기기 일쑤였다. 그러나 삼십 대에 가까워지면서, 머무는 것 또한 배워야 할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피하면 피할수록 결국은 돌고 돌아 제자리로 오게 되고, 그 과정을 지나야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물론 안다고 해서 삶에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우간다에서 지내던 날들에도 불평은 끊이지 않았다. “왜 우리는, 언제까지 우리는, 왜 나는 이곳에서같은 말을 수없이 내뱉으며 버티듯 살아낸 시간들이 있었다. 관계가 무너지는 날이면 지금 당장 비행기표를 끊어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 거기 가면 숨통이 좀 트이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했다. 왜 나를 그 자리에 그대로 두시는지, 왜 내가 원하는 때에 옮겨주시지 않는지 원망하던 날도 많았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오던 날, 이제는 꽃길만 걷게 될 거라 믿었다. 그런데 웬걸, 오히려 더한 가시밭길이 이어졌다.

 

집도 절도 없이 선교관을 떠돌다가, 전입주소가 꼭 필요해진 시기에 간신히 집을 구했다. 결과만 놓고 보면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갔고, 다음을 기대하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불평하고, 만족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마주해야 했다. 분명 은혜를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언제쯤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까요? 저도 좀 편하고 좋은 곳으로 가고 싶어요.” 이 말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기도는 하고 있고, 믿는다고 말하며 살아가고 있었으니 참 아이러니였다.

 

그러던 어느 주일예배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버티는 것, 그 상황에 온전히 머무는 것, 그것 또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가져야 할 태도라는 것. 현재를 원망하는 마음은 믿음의 수준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 안에서 나를 발견해 가는 것이 은혜이고, 영광이며, 그것이 진정으로 부유한 사람의 모습이라는 이야기에 납작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 어떤 말 하나도 나를 비켜가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걸어왔다고 생각했던 그 가시밭길은, 상황이 아니라 현실에 온전히 처하지 못한 나 자신이지 않았을까.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으로 오늘을 보내고, 오지 않은 내일만 붙잡고 있던 내 시선이 만들어낸 길 말이다. 이제야 천천히,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언제나 다음이 아니라 지금이라는 것을.

기록하는비꽃

작가

『일상의 평범함을 깨우다』와 『사모 엄마 아내 선교사』를 썼고, <포포포매거진> 에디터로 일상의 순간을 안온하게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