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25일 수요일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살아남는 경험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종종 심리치료에서 연극을 이용하기도 한다. 비슷한 상황을 재현한 뒤 죽지 않고 살아있음을, 안전함을 경험하는 방법이다.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센티멘탈 밸류》에는 한 가족의 이야기다. 오래전 집을 떠났던 아버지는 어느 날 딸을 위한 각본(자신을 위한 각본이기도 하다)을 들고 집으로 찾아 온다. 홀연히 떠난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던 두 딸과 아버지 사이에 마찰과 진동이 생기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종국엔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을 수 있게 되었으니 일종의 화해를 한 것일테다.
아버지가 가져온 각본에는 그 자신의 서린 경험이 담겨 있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었고 그 경험을 각본에 담아낸 것이다. 그 각본을 딸에게 건낸다. 딸은 마침내 그 각본을 받아 들고 각본 속 어머니를 연기한다. 하지만 각본 속 어머니와 달리 문 뒤의 딸은 살아 있다. 살아 있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아들과 살아서 아버지를 바라보는 딸은 안도감을 불러 일으킨다.
사실 딸의 감정이 썩 이해되는 건 아니었다. 굳이 이해하려 해보자면, 아버지는 연극을 싫어하고, (아마도 편집할 수 없고 관객 앞에 생생히 나서야 하는 점 때문일까?) 딸은 무대의 뒤편을 견딜 수 없어 하는 모습을 보며, 보여지지 않는 부분(살아있는 문 뒤의 배우)의 이야기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이해해본다.
영화는 얼마전 보았던 《햄넷》도 떠오르게 한다. 아들을 잃은 슬픔을 연극으로 승화해 아내와 이해의 순간을 함께 했던 셰익스피어와 영화감독인 아버지가 겹쳐 보인다. 예술을 위해 가족을 떠난 것도, 후에 그 예술로 가족과 화해하는 모습도 꼭 같다. 그래서 작품만 좋으면 개인사는 뒤로 남겨두어도 되느냐는 생각도 드는건 사실이다.

에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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