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잉넛 30주년

2026. 03. 09byKev.D.Ed.

크라잉넛 30주년

 


 

우리가 젊었던 홍대, 그리고 지금의 우리에게 남은 것들

 

얼마 전, 엄청난 한파 속에서 아내와 함께 크라잉넛 30주년 전시를 다녀왔다.

‘벌써 30주년?’이라는 말이 입 밖으로 먼저 나왔고, 그 다음엔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나도 시간이 흘렀구나.

 

전시장에 걸린 연혁을 따라가다 보니 크라잉넛의 30년이 아니라, 내 삶의 시간들이 하나씩 겹쳐 보였다.

밴드를 하던 시절, 처음 홍대 클럽의 계단을 내려가던 순간들, 그리고 지금은 아이 손을 잡고 유모차를 밀며 걷는 나의 현재까지.

 

 

 

 

담배 연기와 피드백 노이즈로 가득했던 홍대의 밤

 

지금의 홍대와 그때의 홍대는 거의 다른 장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는 실내 흡연이 자유로웠고, 지하 클럽 문을 열고 들어가면 늘 뿌연 담배 연기가 가득했다.

방음은 허술했고, 장비도 지금처럼 좋지 않아서 연주 소리는 벽에 부딪혀 튀어나오며 뒤엉켰다.

그래서 더 시끄럽고, 더 날것이었고, 더 살아 있었다.

 

클럽 근처에는 머리를 여러 색으로 염색한 형, 누나들, 삐죽삐죽 솟은 머리를 한 사람들,

놀이터에서는 앰프도 없이 일렉 기타를 치던 사람들,

그리고 홍대답게 팔토시에 물감 자국이 남은 옷을 입고 다니던 미대생들과 입시생들이 섞여 있었다.

 

지금처럼 “잘 차려입고 놀러 오는 곳”이기보다는,

음악과 미술, 그리고 청춘의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모여 있던 장소였다.

 


 

 

해외 록에 눈을 뜨고, 국내 밴드를 찾던 시절

 

그 시절 우리는 해외 록 음악으로 음악적 시야를 넓혀가고 있었지만,

동시에 늘 이런 갈증이 있었다.

그럼 우리나라에는 누가 있지?”

 

그 질문 앞에서 크라잉넛은 피할 수 없는 이름이었다.

1999년, 부라보콘 광고에 등장한 〈말달리자〉는 말이 안 맞는 가사로 대중에게 먼저 각인되었지만,

그 이전부터 홍대 씬에서는 이미 ‘상징’ 같은 존재였다.

 

가사는 지금 생각해도 정말 날것이다.

정제되지 않았고, 포장되지 않았으며, 솔직했다.

그래서 더 크게 와 닿았다.

 


 

 

동네 친구에서 ‘조선 펑크’까지

 

크라잉넛의 시작은 거창하지 않았다.

동네 친구로 시작해 밴드를 만들었고, 심지어 멤버 전원이 함께 군대에 입대했다.

서로 떨어져 지낸 시간이 거의 없는, 말 그대로 찐친구들이다.

 

이 관계성은 음악에 그대로 드러난다.

각을 잡은 밴드가 아니라, 같이 술 마시고 싸우고 웃고 버텨온 사람들이 내는 소리.

 

그들은 자신들의 음악을 ‘조선 펑크’라고 불렀다.

보통 밴드들은 자신을 특정 장르로 규정하려 하지만,

크라잉넛은 오히려 “펑크라고 하기엔 너무 섞여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들의 음악은

펑크를 기반으로 스카(Ska), 포크(Folk), 레게, 메탈, 심지어 트로트의 감성까지 뒤섞인다.

이 짬뽕 같은 사운드가 이상하게도 한국적이고, 동시에 자유롭다.

 

 

 

웃고 뛰지만, 가볍지 않은 노래들

 

겉으로 보면 크라잉넛의 음악은 늘 신나고, 웃기고, 술 마시기 좋은 노래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사를 곱씹어 보면 전혀 다르다.

 

그들은 늘 소외된 사람들삶의 바닥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편에 서 있다.

삶의 억압과 슬픔, 분노를 외면하지 않고,

그것을 낙천성과 유머, 그리고 축제로 승화시킨다.

 

절망 앞에서 주저앉는 대신

“그래도 한 번 더 웃고, 한 번 더 뛰자”라고 말하는 밴드.

이 태도가 바로 크라잉넛의 철학이다.

 


 

 

우리가 지금 크라잉넛을 다시 듣는 이유

 

이제 우리는 10대도, 20대도 아니다.

아이를 키우고, 책임을 지고, 내일의 일정과 통장 잔고를 동시에 걱정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도 크라잉넛의 노래를 들으면

그 시절 홍대의 냄새와 소음, 그리고 아무것도 없던 용기가 떠오른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그들의 노래는 과거의 향수가 아니라,

지금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필요한 태도라는 걸.

 


 

그들이 남긴 유산

 

크라잉넛은 인디도 대중적일 수 있고, 펑크도 낭만적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밴드다.

 

그들의 철학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웃음을 찾아내고,

힘들 때일수록 서로 어깨동무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더 이상 홍대 클럽의 관객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삶이라는 무대 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말달리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서 크라잉넛은

여전히 같은 속도로, 같은 마음으로 노래하고 있다.

 


 

 

🎸 크라잉넛 30주년 기념 플레이리스트

 

1. 질주하는 펑크의 시작 (초창기 에너지)

• 말 달리자 (1집): 설명이 필요 없는 국가대표 펑크 송. "닥치고 내 말을 들어!"

• 서커스 매직 유랑단 (2집): 크라잉넛 특유의 뽕짝 펑크와 유쾌한 상상력이 극대화된 곡.

• 갈매기 (1집): 부산 앞바다를 홍대로 옮겨놓은 듯한 폭발적인 사운드.

 

2. 낭만과 밤의 서정 (감성 록의 정점)

• 밤이 깊었네 (3집): 대중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곡이자, 크라잉넛의 멜로디 감각이 빛나는 명곡.

• 지독한 노래 (3집): 처절하면서도 시원하게 내지르는 보컬이 일품입니다.

• 명동콜링 (5집): 명곡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음을 증명한, 쓸쓸하면서도 따뜻한 노래.

 

3. 지치지 않는 유쾌함 (중기~최근)

• 좋지 아니한가 (6집): 영화 OST로도 유명하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듬뿍 주는 곡.

• 룩셈부르크 (5집): 전 국민을 룩셈부르크로 여행 보냈던 중독성 강한 멜로디.

• 리모델링 (8집): 여전히 날이 서 있으면서도 성숙해진 그들의 사운드를 느낄 수 있습니다.

 

4. 30주년을 기념하는 피날레

• 다 죽자 (4집): 공연장에서 떼창과 슬램을 빼놓을 수 없는 곡.

• 좋은  되세요 (7):  여정을 함께한 팬들에게 건네는 다정한 인사 같은 .

Kev.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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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가 좋아 기타 매장에서, TV가 좋아 방송국 FD로, 음악이 좋아 아티스트 매니저까지 하다가, 이젠 먹고살자고 미국 항공 화물회사에서 근무 중입니다. 한** 전남친이자 현남편, 캉캉이 아빠로 살고 있으며, 락앤롤과 블루스를 사랑하는 살짝 락시스트(Rockist) 성향의 평생 밴드 키드(락덕 아저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