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열 살 요엘이 입에서 툭 튀어나온 말이란다 요즘 왜 그렇게 가까운 친구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집에서는 도통 저녁을 안 먹으려고 하나 궁금했는데, 이런 생각 때문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놀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저녁까지 해결하고 오는 날이 대부분인데 단짝 친구 집이 걸어서 집에서 5분 거리라 거의 매일 간다. 누나 형은 늦게 끝나는데 요엘은 일찍 끝나니까 매일 집에서 심심한 통에 친구랑 서로 만나 외로움을 달랜다. 하루는 남편이 같이 걸어 데려다주면서 들었다며 내게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어처구니없는 웃음이 터졌다. 대체 뭐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을까?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둥근 식탁에 앉아 남편, 둘째 다엘이 와 같이 저녁을 먹던 중이었다.
"다엘아 요엘이가 우리 집이 찢어지게 가난하다고 했다는데 너 요엘이가 그런 말 한 거 들었어?"
그러자 다엘이 대답했다.
"네, 아니에요? 그거 누나가..."
이야기를 듣자 하니, 첫째 별이가 다엘, 요엘을 앉혀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자꾸 엄마 아빠한테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조르지 말라며 한 소리 한 모양이다. 그 말을 듣자니 또 어처구니가 없었다. 셋 중 가장 많은 요구를 하는 아이는 첫째 별이다. 참고 참고 또 참고 이야기하는 거겠지만, 중학생이기도 하고, 필요한 많은 나이다.
다음날, 별이가 학교 다녀온 후 이야기 할 시간이 있었다. 삼 남매와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서 간식거리를 먹다가 이때다 싶어 이야기를 꺼냈다.
"너희 우리 집이 찢어지게 가난하다고 생각했어? 왜 그런 생각을 했어?라고 물었다.
"맞잖아요. 아니에요?" 별이 당연하단 듯이 입을 열었다.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의 정의를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았다.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아주 심각하고 극심한 빈곤 상태를 뜻하는 관용적 표현입니다. 보통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라는 말의 줄임말로 사용됩니다. 이 표현의 의미와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실제 유래 (보릿고개): 과거 배고픈 시절, 먹을 것이 없어 나무껍질이나 풀뿌리(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시절에서 유래했습니다. 제대로 소화되지 않는 거친 음식을 먹어 변비가 생기고, 딱딱해진 변을 보다가 실제로 항문(똥구멍)이 찢어지는 고통을 겪었던 비참한 상황을 비유한 것입니다.* 의미: 단순히 '돈이 없다'는 수준을 넘어, 당장의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절박하고 궁핍한 생활을 뜻합니다.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 마이너스 통장이었던 시기도 있었고,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던 것도 있었다. 여전히 넉넉지 않은 것도 맞다. 필리핀 물가가 이렇게나 비쌀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여하튼 고군 분투 하면서 살지만, 지금까지 "찢어지게" 가난했던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찢어지게 가난하단의 의미를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었다. 결론적으로는 우리는 한 번도 찢어지게 가난한 적이었다고 말이다.
"근데 OO한테 다른 애들이 "너네 집 부자잖아"라고 하면 부자 아니라고 해요. OO이 부자가 아니면 우리 집은 뭐예요?" 최근에 친구들 사이에서 이런 말이 오갔는지 비교를 해봤던 모양이다.
"그리고 엄마는 다른 집에 갈 때 매번 뭐 사가지고 가기도 하고, 하긴, 엄마가 저 뭐 필요하다고 하면 다 해주셔서 어 뭐지? 하기 했어요."
그 동안 뭐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나선 '아 아니에요. 근데 꼭 해야 되는 건 아니에요. 아니에요. 안가도 돼요' 이런식으로 말했던 별이긴 하다.
"너희 옷 찢어져서 맨날 꿰메서 입고 다녀? 아니잖아. 한 벌만 입는 것도 아니고, 배가 고파서 쫄쫄 굶지도 않잖아? 너희는 엄마 아빠 눈치 보지 말고, 필요한 거나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지 이야기하면 돼, 안되고 해 줄 수 없으면 엄마가 안 된다고 엄마가 말하잖아."
기가 찼다. 아이들이 이런 고민을 하는구나. 가만 생각해 보니, 나도 중학생쯤 되었을 때, 아니 더 일찍 초등학생일 무렵(아니 국민학생) 우리 집은 부자가 아니어서 슬펐던 기억이 났다. 나는 금수저가 아닌 게 몹시 속상했던 때 말이다. 친구는 패밀리 레스토랑(그 당시 코코스, 엄청 센세이션 했다)에서 생일 파티 하는데 나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이었으니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친구 집에 있는 그랜드 피아노와 매일 드레스를 번갈아 입는 친구를 보면서 우리 집이 부자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부자의 기준은 상대적일 수도, 절대적일 수도 있다. 돈을 벌어보고 써보니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 넉넉하지 않고, 돈이 적다고 해서 못 사는 것도 아니었다. 많으면 좋고, 없으면 불편한 게 돈이 맞고 부자였던 적은 없지만, 없이도 살아보고 있어도 살아봤다. 다 그에 맞게 살게 되더라. 그래도 돈이 없으면 근심 걱정이 많아지고 고민거리가 늘어나는 건 맞다. 나는 크리스천이라 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채워지는 경험도 하면서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경험하면서 산다.
돈이 많아야 부자가 맞긴 하지만, 부자의 개념은 다르게 볼 수도 있단 생각이 든다.
가격표 보지 않고 물건을 살 정도로 부자가 되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아이들의 오해 덕분에 나 역시 부자의 기준을 다시 세워본다. 통장의 잔고가 넘쳐나야만 부자인 줄 알았는데 사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부유했다. 서로의 짐을 나누려 애쓰며 엄마 아빠의 힘든 부분을 채워주려는 첫째 별이의 책임감, 때때로 이야기 나누고 하하 웃으며 대화할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것, 부족함 속에서도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경험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 만으로 이미 부유한 게 아닐까. 돈이 없어 불편한 순간이 여전히 있지만, 서로를 위하는 이 마음이 찢어지지 않는 한 우리 집은 절대로 '찢어지게 가난한 집'이 될 수 없다.
오늘은 한인 교회 주일 학교 여름 성경 학교에 아이스크림 25개를 배달했다. 인원이 적어서 조금 샀지만, 생각보다 좀 비쌌다. 그래도 맛있고 좀 좋은 걸로 기분 좋게 나눌 수 있어 감사했다. 아이스크림 박스를 5개나 쌓아서 들고 가는 엄마를 보고 보조 교사 하다 뛰쳐나온 다엘이가 얼른 받아 교회 주방으로 가져갔다.
넉넉해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에 나누는 이 마음이야말로 세상 그 어떤 금수저보다 값진 믿음의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glow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