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는 놀 수 있겠어

2026. 03. 16by기록하는비꽃

선교관에서 지내던 시간을 정리하고, 드디어 오늘 이사한다. 이사를 준비하는 동안 남편이 정말 애를 많이 썼다. 말해 뭐 하겠는가. 처음 그 집을 보았을 때의 인상은 아직도 선명하다. 정말 뭣 하나 깨끗한 구석이 없었다. 바닥이며 벽이며, 여기저기 묵은 때가 쌓여 있었고, 집 안에는 오래 살았던 사람의 생활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단순했다. ‘대체 이렇게 치우지 않고 살면 위생에 아무 문제없나.’

 

그 정도로 손이 닿는 곳마다 낡은 흔적이 있었다. 싱크대 주변도, 창틀도, 바닥도, 눈이 가는 곳마다 ‘청소’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다. 집을 보면서 솔직히 마음이 복잡했다. 감사한 상황이라는 건 알지만, 동시에 ‘여기서 살겠나’ 하는 생각도 스쳤다. 아이들과 여기서 생활한다고 생각하니 막막한 마음이 먼저 올라왔다. 그런데 남편은 그 집을 보면서 다른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며칠 동안 남편은 그 집을 붙잡고 살았다. 걸레를 들고 닦고 또 닦고, 오래된 것들을 하나씩 고치고, 손이 닿는 곳마다 만지면서 집을 정리했다. 문이 삐걱거리면 고치고, 낡은 것을 떼어내고, 다시 붙이고, 바닥을 닦고 창틀을 닦고 또 닦았다. 그 모습을 보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낡은 집일 수도 있었는데 남편은 그 집을 살 수 있는 집으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사실 나는 그 과정에 많이 참여하지 못했다. 집을 보았을 때의 첫인상이 마음에 남아 있어서인지, 선뜻 손을 대기가 어려웠다. 한 번씩 집에 들어갈 때마다, 집을 보는 눈이 조금 달랐다. 여기는 아직 더 닦아야겠고 저기는 또 손을 봐야겠고 이건 바꾸면 좋겠고. 머릿속은 계속 그런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그때마다 아이들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아직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남편이 한참 손을 보고 있는 중이었고, 집은 말 그대로 정리되기 전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집 안을 들어서더니 갑자기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와— 넓다.”

그리고 잠깐 집 안을 둘러보더니 또 말했다.

 

“여기서는 놀 수 있겠어.”

나는 그 말을 듣고 잠깐 멈췄다. 아이들이 그렇게 말하는 동안, 나는 여전히 집의 부족한 부분들을 보고 있었다. 아직 닦이지 않은 곳, 손볼 곳, 정리되지 않은 곳. 그런데 아이들은 그 집에서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넓다. 그리고 놀 수 있다.

아이들의 시선에는 그 두 가지면 충분했던 거다. 생각해 보니 아이들이 그렇게 느낄 만도 했다. 1월에 한국에 와서 아이들이 지냈던 공간은 대부분 선교관이었다. 그것도 원룸 형태의 공간이었다. 방 하나가 생활의 거의 전부였다. 아이들이 조금만 크게 웃어도 먼저 주변을 살폈다. 혹시 옆방 선교사님에게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 아이들이 조금만 뛰어도 자연스럽게 말이 나왔다.

 

“조용히 해.”

“뛰지 마.”

“옆에 계시잖아.”

그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했다. 아이들은 원래 뛰어다니는 존재인데, 우리는 계속 아이들의 발걸음을 붙잡아야 했다. 아이들이 웃다가도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는 순간을 볼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조금 묘해졌다. 그래서였을까. 정리되지 않은 그 집에서 아이들이 가장 먼저 한 말이 “넓다”였다는 것이, 마음에 남았다. 아이들은 집이 얼마나 깨끗한지 보지 않았다. 집이 얼마나 새것인지도 보지 않았다. 그저 자기가 마음껏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인지를 먼저 보았다. 어쩌면 어른과 아이의 차이는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저 자신에게 열려 있는 공간을 본다.

 

“여기서는 놀 수 있겠어.”

오늘 저녁이면 우리는 그 집으로 들어간다. 남편이 며칠 동안 닦고 고치고 정리했던 그 집이 이제는 말끔해져 있을 것이다. 짐도 들어가고, 생활의 물건들이 놓이고, 비로소 집 같은 모습이 될 것이다. 아마 아이들이 저녁에 그 집에 다시 들어가면 또 한 번 집 안을 뛰어다닐 것이다. 그리고 아마 다시 말할지도 모른다.

 

“우리 집이다.”

집은 완벽해서 집이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그 안에서 살기 시작할 때 집이 되는 것일지도. 오늘 저녁, 우리는 그 집에 들어간다. 그리고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다. 그 집이 어떤 집인지. 그저 마음껏 놀 수 있는 집이면 된다는 것을.

기록하는비꽃

작가

『일상의 평범함을 깨우다』와 『사모 엄마 아내 선교사』를 썼고, <포포포매거진> 에디터로 일상의 순간을 안온하게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