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는 언제쯤 제대로 하게 될까요?

2026. 02. 16by기록하는비꽃

싸우지는 않는다. 언성을 높이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대화하고 나면 마음 어딘가가 계속 찌꺼기처럼 남는다. 서로를 향해 말하고는 있지만, 그 말들이 존중 위에 놓여 있다는 느낌은 좀처럼 들지 않는다. 정확히 무엇이 문제인지 설명하긴 어렵지만, “지금 우리는 제대로 이야기하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이 대화가 끝날 때마다 따라온다.

 

한국에서 아이들과 정착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많은 체력을 요구한다. 행정, 학교, 집, 계좌, 서류,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결정들. 최근 남편도 우간다에서 들어왔다. 원래라면 서로 등을 밀어주며 “지금은 그냥 같이 버티자”라고 말해도 모자란 시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흐른다. 서로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 것 같은데, 속도와 방식이 다르다. 아니, 다르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상태에 가깝다.

 

나는 되도록 빨리 해치우고 싶은 쪽이다. 일단 결정하고, 일단 진행하고, 가면서 수정해도 된다고 믿는다. 반면 남편은 정확해야 한다. 충분한 자료가 모여야 하고, 하나하나 확인한 뒤에야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MBTI로 따지자면 나는 J 성향이 최고 점수임에도, 그의 속도 앞에서는 계획이 아니라 숨부터 막힌다. 아직 결정되지 않은 일들이 머릿속에 쌓여, 가만히 서 있는 시간이 나에게는 이미 지연처럼 느껴진다. 이상하게 남편의 속도 앞에서는 조급함이 먼저 튀어나온다. ‘왜 이렇게 느리지?’라는 생각과 동시에 ‘이 시간에 이것밖에 못 했다고?’라는 초조함이 겹친다. 그러다 보면 대화는 점점 이상한 모양이 된다. 누군가 화를 내는 것도 아니고, 큰 소리가 오가는 것도 아니다. 다만 서로의 방식에 동조하지 않은 채, 최대한 감정을 눌러 담은 목소리로 말한다. 말은 공손한데 마음은 이미 삐딱해져 있다.

 

“그건 그렇게 하면 안 돼.”

“아니, 이건 좀 더 확인해야 해.”

 

서로의 말을 듣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각자의 기준을 지키느라 바쁘다. 생각해 보면 이런 대화는 연애 시절에는 거의 없었다. 그때는 말이 많았고, 질문도 많았고, 설명도 길었다.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면 이해할 때까지 묻는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결혼하고, 삶이 현실이 되고, 책임이 늘어나면서 대화는 점점 ‘협의’가 아니라 ‘업무 조율’이 되었다. 감정을 다루는 말은 줄어들고, 결론을 향한 말만 남았다. 나는 늘 그 점이 서운했다.

 

‘왜 나랑 이렇게는 얘기 안 해?’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그 말을 꺼내면 또 하나의 피곤한 대화가 시작될 것 같아 삼켰다. 남편은 아마 이런 나를 보며 피곤했을 것이다. 늘 감정의 결을 따지고, 말의 태도를 묻고,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아내. 지금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 왜 굳이 그런 걸 짚고 넘어가야 하냐는 얼굴.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이해의 우선순위가 다른 건 아닐까. 나는 ‘어떻게 말하느냐’를 중요하게 여기고, 남편은 ‘무엇을 해결하느냐’를 중요하게 여긴다. 나는 대화 자체가 관계를 증명한다고 믿고, 남편은 결과가 관계를 지탱한다고 믿는 사람 같다. 문제는, 이 차이를 알고도 여전히 같은 방식의 대화를 반복한다는 데 있다. 상대가 바뀌길 기다리면서, 정작 나는 조금도 바뀌지 않은 채로 말이다. 그래서 대화는 늘 어딘가 미완성으로 끝난다. 결론은 나지만, 마음은 남지 않는다.

 

대화는 언제쯤 제대로 하게 될까. 아마도 상대가 내 방식으로 말해줄 때가 아니라, 내가 상대의 언어를 배울 때일 것이다. 빠름과 느림, 감정과 논리, 공감과 효율. 그 사이 어딘가에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는 지점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말해놓고 보면, 사실 나는 답을 모르는 게 아니다.

 

내려놓으면 된다.

상대에게 맞추면 된다.

조금 낮아지면 된다.

 

머리로는 너무 잘 안다. 이 관계에서 무엇이 가장 빠른 해결책인지, 무엇이 가장 덜 다치는 선택인지. 다만 문제는 그것이 내가 가장 하기 싫은 방식이라는 점이다. 내려놓는다는 건 패배처럼 느껴지고, 맞춘다는 건 나를 지우는 일 같고, 낮아진다는 건 그동안 애써 쌓아온 나의 언어와 태도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여기서 맴돈다. 답을 알면서도 택하지 않고, 방법을 알면서도 외면한 채로.

 

지금의 이 불편한 감각이 우리를 멀어지게만 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때로는 나를 더 곤란하게 만든다. 정말 멀어지고 있다면 차라리 체념이라도 쉬울 텐데, 우리는 여전히 같은 방향을 본다. 다만 서로 다른 속도로, 서로 다른 언어로. 그래서 이 질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또렷해진다. 이 질문 덕분에 나는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왜 결혼했는지, 왜 이렇게 다른 별에서 온 사람처럼 느껴지는지를. 그리고 그 다른 별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이, 결국은 대화라는 것을. 그 대화는 상대를 설득하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를 조금 내려놓는 일이라는 것도. 완성된 대화는 아직 오지 않았다. 어쩌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 부재를 느끼고 있고, 그 어려움을 알고 있고, 그게 싫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는 사실만큼은 우리 사이에 아직 남아 있는 감각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여전히 버티는 중이다.

기록하는비꽃

작가

『일상의 평범함을 깨우다』와 『사모 엄마 아내 선교사』를 썼고, <포포포매거진> 에디터로 일상의 순간을 안온하게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