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특정 병원 추천이나 아내를 디스하는 글도 아닙니다. 재미로 봐주시길 :)
프롤로그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쪽은 늘 내가 아니었다.
대학 시절, 친구 손에 이끌려 관심도 없던 천문 동아리에 가입했다. 정작 친구는 한 달도 안 돼 떠났지만, 그곳에 남아 지금까지 멤버들과 인연을 이어가는 건 나다. 아내가 호기심에 덜컥 들여놓은 나무 식기세트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투덜거렸지만, 관리법을 공부하고 하나하나 사포질하고 기름을 먹이며 닦는 사람은 결국 나였다.
지금부터 풀어놓을 이야기도 아내의 손에 이끌려 간 한의원에서 시작되었다. 만성적인 목 통증을 달고 살았지만, 나는 특별히 그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운전 중 뻐근하게 목을 돌리거나 거북이처럼 목을 빼고 있는 내 습관을 먼저 알아차린 건 아내였다. (결혼의 장점 중 하나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관찰자가 생긴다는 것이다. 심지어 나조차, 그리고 내 오랜 친구들조차 몰랐던 내 혀끝이 갈라져 있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해 준 것도 아내였으니까.)
회사 동료의 추천을 받은 아내는 예약하기 힘들다는 한의원을 수소문해 나를 데려갔다. 선생님은 진맥 후 나의 체질을 진단하더니 침대에 누운 내 손목과 다리에 침을 놓기 시작했다. 꽂아두는 방식이 아니라 빠르게 찔렀다 빼는, 낯선 방식이었다.
잠시 후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나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누군가가 항상 뒤에서 당기고 있는 듯했던 목의 통증이 씻은 듯 사라진 것이다. 전통적인 사상의학을 세분화한 ‘팔체질 의학’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체질에 맞는 식단을 적은 책자를 받아 들었다. 선천적인 장부의 강약과 임상에 따른 체질 분류. 그 체계적인 논리에 매료되었고, 그렇게 체질 의학은 또다시 내 마음 한켠에 정착하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부족이었을까
구체적인 체질명을 나열하진 않겠지만, 진단 결과 아내는 위가 강해 육류와 유제품이 잘 맞는 체질이었고 나는 간이 약해 모든 육식이 맞지 않는 체질로 판명되었다. 책자에 적힌 체질별 성향을 읽어 내려가며 우리는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하면서도 궁금해졌다. 같은 한민족인데 우리는 왜 이토록 체질이 다르고, 그에 따른 기질마저 분류되는 것일까. 혹시 우리는 아주 먼 옛날, 서로 다른 곳에서 출발해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아닐까.
그 답을 찾아 나서기 전, 신혼 초로 거슬러 올라가 우리 부부의 가장 자연스러운 주말 일과를 소개하려 한다. (물론, 지금은 체질이고 기질이고 할것 없이 육아로 전쟁 같은 주말을 보내고 있지만.)
아침 : 아침 햇살이 들어오고 눈이 자연스레 떠진다. 옆자리의 나내는 아직 한밤중이다. 홀로 일어나 전날의 흔적을 치우기 시작한다. 말라붙은 와인잔과 어질러진 식탁을 묵묵히 닦아낸다. 배가 고프지만 일단 아내가 일어날 때 까지 묵묵히 기다려 본다.
점심 : 어느덧 해가 중천이다. 느지막이 일어난 아내가 점심을 준비하기 시작하면 주방은 순식간에 활기를 띤다. 찬장에서 조미료와 식재료가 쏟아져 나오고, 요리가 완성될수록 조리대는 발 디딜 틈 없이 좁아진다. 냄비와 식기가 모든 공간을 점령해버린 그 혼돈 속에서 그녀의 요리는 흡사 곡예와 같다. 마침내 완성된 무거운 주물 냄비는 갈 곳을 잃고 싱크대 모서리 한 뼘 남짓한 공간에 놓여 위태로운 균형을 잡는다.
외출 : 점심 식사를 마치고 늘어져 있다가 해가 뉘엿뉘엿 해질 쯤 우리 부부는 외출을 준비한다. 백화점 식품관을 둘러보다 처음 보는 디저트 매장을 발견했다. 아내는 절대 지나치지 않고 들어가 보자고 한다. 난 메뉴를 하나하나 살피고, 원재료는 무엇인지 꼼꼼히 살피기 시작한다. 반면 아내는 점원에게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묻는다.
“여기서 제일 잘 나가는게 뭐에요?”
저녁 : 집으로 돌아오는 길, 현관 앞에 2주째 놓인 택배 상자를 들고 들어온다. 잔소리를 삼키며, 오늘 사냥해 온 음식들을 펼쳐 둔다. 가볍게 끼니를 때우며 어제 마시고 남은 와인을 나누는 주말 저녁. 문득 명절 열차표 예매 기간이 지난주였다는 사실이 떠올라 아내에게 말을 건넨다.
아내는 곧바로 침대에 앉아 스마트폰을 든다. 결과는 늘 그렇듯 성공이다. 나는 아무리 새로고침을 해도 구경조차 못한 표를 그녀는 기어코 잡아낸다. 구하기 어렵다는 프로야구 인기 시리즈 표 (e.g. LG-두산 어린이날 더비)나 경쟁 치열한 공동구매를 곧잘 성공시키는 아내를 볼 때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문화의 용광로, 한반도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유물 중에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것과 크기도, 굵기도 놀라울 만큼 흡사한 은제 젓가락과 숟가락이 포함되어 있다. 중국이나 일본이 나무 젓가락을 주로 사용하는 것과 달리, 우리 조상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고도의 금속 재련 기술을 식생활에 녹여내었다.
이는 한반도가 단순히 하나의 색깔을 지닌 땅이 아니었음을 시사한다. 우리는 북방 대륙의 유목 문화와 해양의 어로 문화, 그리고 정착지의 농경 문화가 층층이 쌓이고 섞인 ‘문화의 용광로’였다. 국물을 즐기는 남방식 식습관과 고기를 젓가락으로 찢어 먹던 북방의 풍습이 만나 숟가락과 쇠젓가락의 정교한 조합을 탄생시킨 것이다.
아내의 몸속에 흐르는 ‘유목민의 유전자’
이 거대한 융합의 역사 속에서, 아내는 유독 ‘북방 유목민’의 주파수에 강하게 반응하는 쪽이다. 그녀의 기질을 인류학적으로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뛰어나고 즉각적인 자극에 민감한 유전적 코드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것 같다. 뇌 속의 도파민 수용체 중 하나인 'DRD4-7R' 유전자는 일명 ‘탐험가 유전자’로 불린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모험심을 자극하는 이 형질은 광활한 초원을 누비며 사냥감을 찾아내야 했던 유목 민족에게서 높은 빈도로 발견된다.
명절 기차표 예매나 고난도의 공동구매 같은 ‘찰나의 승부’에서 놀라운 집중력과 민첩성을 발휘하는 아내의 모습은 영락없는 초원의 사냥꾼이다. 뛰어난 눈썰미와 직감, 남의 말을 잘 믿고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기질 또한 낯선 땅에서 생존 정보를 빠르게 수집하려는 정찰 본능의 발현이 아닐까 싶다.
아내는 항상 후퇴 없이 직진한다. 요리를 시작하면 근사한 맛을 내는 것이 목표일 뿐, 사용한 물건이 제자리로 돌아갈 여유는 없다. 쇼핑을 하면 가장 훌륭한 전리품을 찾아내는 것이 유일한 미션이다. 목표가 정해지면 그녀는 무섭게 돌진하고, 성취한 뒤에는 미련 없이 다음 행선지로 향한다.
반면, 나는 영락 없는 농경민이다. 시간의 압박을 견디기 힘들어하고 벼락치기에는 서툴지만, 긴 시계열을 묵묵히 견디는 끈기를 가졌다. 대단히 깔끔한 성격은 아니더라도, 나의 정착지가 어수선해진 모습은 참기 어렵다. 유목민이 휩쓸고 간 공간을 정리하고, 다시 정착지의 질서를 세우는 것은 언제나 나의 몫이다.
이 모든 이야기는 한의원에서 시작된 나의 엉뚱한 상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대방을 나와 다른 부족으로 바라보는 이 관점의 전환은 꽤나 유효했다. 덕분에 나는 특별히 감정을 소모해가며 억지로 나를 바꾸거나, 상대를 뜯어고치려 애쓰지 않게 되었다.
이해할 수 없던 아내의 행동을 그녀만의 ‘기질’과 ‘생존 방식’으로 번역하는 순간, 마땅치 않던 상황들이 자연스레 납득되었기 때문이다. 도무지 섞일 수 없을 것 같던 북방의 유목민과 남방의 농경민이 만나 지금의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듯이, 어쩌면 우리 부부의 역사 또한 그 극명한 ‘다름’ 덕분에 이토록 지루할 틈 없이 쓰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네비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