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0일 토요일
심은경 주연, 미야케 쇼 감독의 《여행과 나날》을 보았다. 이야기를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폭우가 내리는 여름날, 한 남성과 여성이 바다에서 수영을 한다. 입술이 새파래지도록. 이게 뭐지? 추운 한 겨울에 스크린 가득한 비와 파도, 흠뻑 젖은 배우들을 만나니 온 몸이 서늘해지는 느낌이다. 여름날의 느낌과 사뭇 다르다. 머릿속에선 '지금은 여름이 배경이니까 후덥지근한 공기와 짭짤한 바다냄새, 그리고 젖은 몸의 찝찝함을 느껴야 해'라고 말하지만 몸은 서늘함을 느낀다. 일종의 인지부조화 속에서 허우적대는 느낌이다. 잠시후, 영화 속에서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 이 영화는 머리가 아닌 온 몸으로 느끼는 영화라고.
바로 다음, 어두운 터널을 통과한 화면은 설원을 비춘다. 우동과 김 서린 안경이 따뜻함을 전해주기 위해 노력하지만 순간적으로 주변 온도가 5도는 내려간 느낌이다. 한겨울, 숙소를 구하지 못한 주인공은 산 속 여관을 찾아가고, 그곳은 실내에서도 입김이 나는 집이다. 온 몸으로 느끼는 영화가 이런 영화구나, 싶다.
이야기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각본가는, 언어에 갇혔을 때 어떻게 탈출구를 찾을 수 있을까. 그런 면에서 여관 주인은 큰 힌트가 되어주었다.
여관을 배경으로 각본을 써보는건 어떻겠냐는 여관 주인의 제안에 주인공은 여관 주인을 인터뷰한다. 늘 해오던대로. 언어에 갇혀서. 여관 주인은 곧 거절한다.
하지만 한밤중 떠난 여관 주인과의 옆동네 산책. 일탈을 경험하고, 일상을 떨어뜨리고, 우연을 만나고, 여행을 되돌아본다. 이야기가 없었지만 드라마가 완성되었다. 떠나는 주인공의 발걸음이 가볍다.

에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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