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아하는 취미가 뭐예요?" 예전엔 이 질문이 참 어렵게 느껴졌다. 게임, 음악, 운동… 즐기는 건 많았지만, 하나를 콕 집어 ‘내 취미’라고 말하기엔 애매했기 때문이다.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며 일과를 마친 후 나에게 남는 시간과 에너지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간의 궁핍함’이 내게 정말 좋아하는 단 하나를 선별할 수 있는 동기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남은 취미, 바로 ‘와인’이다.
두 아이의 양육자인 내게 와인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가족 식사나 친구와의 짧은 만남 중에도 즐길 수 있고, 원치 않는 백화점 쇼핑 중에도 ‘와인샵’은 피난처가 되어준다. 무엇보다 마시지 않을 때조차 공부하고 사유하며 즐길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해 보일지 모르지만, 내 일상을 유지하면서도 관심사를 이어갈 수 있는 적절한 타협점이 바로 ‘와인’이다.
와인은 어렵지 않아?
왜 한낱 술에 불과한 와인에는 수많은 책과 잡지, 평론가와 자격증까지 존재할까. 혹자는 그래서 와인이 어렵고, 아는 사람만 즐길 수 있는 술이 아니냐는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와인과 결이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기호식품이나 취미는 커피나 재즈 등이 있다. 커피나 재즈 모두 각기 다른 취향과 깊이,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즐길 수 있다. 꼭 생소한 스페셜티 커피산지를 몰라도, 수많은 뮤지션의 이름이나 스윙과 비밥의 차이가 뭔지 몰라도 즐기는데 무리는 없다. 일상 속 습관적인 카페인 공급원이나 분위기를 만드는 배경음악으로도 충분하지만, 그 이상을 원한다면 공부하고 경험할 것이 끝없이 펼쳐진다. 와인역시 이런 점에서 재즈나 커피와 닮아 있다. 자연스러운 식사 파트너로도 충분하지만, 또 누구에게는 탐구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간단한 운동이나 악기 연주처럼 숙련도가 비교적 한 방향으로 축적되는 취미와 달리, 앞서 언급한 취미들은 복잡하고 다양한 방향성을 동시에 지닌다. 특히 와인에서는 ‘포텐셜’이라는 특성이 이러한 복잡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내가 생각하는 포텐셜의 중요한 두 가지 속성은 고유성과 변화 특성이다. 물리적으로 산 위에 고여 있는 물의 고유한 위치 에너지는 전기 에너지로 변환될 수 있고, 높은 곳만 보이면 딛고 올라가 "저 몇 살 같아요?" 라고 묻는 아들을 보면, 이미 본인의 포텐셜을 알고 있는 듯 하다.
고유한 성질이 있고, 변화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때 비로소 잠재력이 된다. 그리고 이 두 속성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술이 바로 와인이라고 생각한다.
떼루아: 땅이 부여한 고유성
일반적으로 맥주, 청주, 위스키 등 곡물을 기반으로 한 술의 경우 원료 보다는 생산자의 양조방식이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중국 청도에는 맥주로 유명한 칭따오(Tsingtao) 공장이 있고 옛날의 공장을 개조하여 만든 맥주 박물관을 방문할 수 있다. 하지만 원료가 되는 보리밭은 볼 수 없다. 대부분 다양한 국가에서 원료를 수입하기 때문이다.
반면 와인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보르도(Bordeaux)를 방문하면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의 풍경과 그 옆에 위치한 웅장한 성과 내부의 양조장을 방문할 수 있다. 와인에서는 원료인 포도가 품질이나 스타일을 결정 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떼루아(Terroir)’는 토양과 기후 등 포도가 자라는 모든 환경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포도나무는 뿌리를 깊이 내려 그 땅의 성분을 흡수하고, 그 해의 햇빛과 바람을 열매에 새긴다. 다양한 떼루아의 발현은 지역, 품종, 빈티지 마다 고유한 성질을 만들어 낸다.
시간과 함께 변화하는 술
상상해 보자. 당신 앞에 좋은 와인 한 병이 놓여 있다. 잔에 따르고 향을 맡으니 붉은 과실 향과 장미 향이 피어오른다.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한 모금 마시고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 뒤 다시 잔을 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처음에 났던 향은 잦아들고, 이번엔 비 젖은 숲속의 흙내음이 올라온다. 분명 같은 와인인데,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친구와 눈이 마주치자 호기심 어린 미소가 번진다.
맥주나 위스키는 병입 되는 순간 맛이 결정되지만, 와인은 출시 이후에도 천천히 변화해 간다. 어떤 와인은 세월을 견디며 원숙해지고, 어떤 와인은 빠르게 노쇠하여 마실 수 없는 술이 되기도 한다.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수십 년. 와인은 시간의 흐름을 온몸으로 기록하고 표현하는 술이다.
우열이 아닌 적합성의 세계
포텐셜이 있다는 건, 세상이 그만큼 복잡하고 흥미롭다는 뜻 아닐까. 스포츠팀을 보자. 몸값 높은 스타 선수들만 모은다고 우승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화려하진 않아도 묵묵히 제 몫을 하는 선수, 갑자기 잠재력이 만개한 신인 선수가 조화를 이룰 때 기적 같은 승리가 만들어진다.
와인도 그렇다. 여기엔 절대적인 우열이 없다. 한여름 야외에서는 수십만 원짜리 묵직한 레드 와인보다, 2만 원짜리 뉴질랜드 쇼비뇽 블랑의 상큼함이 훨씬 빛난다. 시끌벅적한 파티에서 수십 년 숙성이 필요한 고급 와인을 따는 건, 와인에게도 마시는 사람에게도 예의가 아니다.
와인의 세계는 우열이 아니라 ‘적합성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다. 비싼 와인이라고 모든 순간을 빛내주지 않으며, 저렴하다고 기쁨을 주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건 그 와인이 가진 잠재력이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와 얼마나 잘 어우러지는가이다.
와인력, 그리고 안목
와인 평론가 맷 크레이머는『와인력』에서 애호가의 경지를 ‘골동품 감정’에 비유했다. 수많은 복제품 속에서 진품의 미묘한 차이를 알아보는 힘. 그것은 오랜 경험과 애정 어린 관심으로 다져진 ‘안목’에서 나온다.
단순히 “맛있다”, “비싸다”를 넘어 그 존재의 고유한 정체성과 잠재력을 알아보는 눈. 이것이 바로 ‘와인력’이다.
글을 쓰다 보니 문득 또 다른 나의 관심사인 투자와 육아도 이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투자력’과 ‘육아력’ 역시 결국은 안목을 기르는 일이 아닐까. 당장의 성과를 재촉하기보다 알맞은 때를 기다려주는 마음. 아직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본질을 꿰뚫어 보는 능력. 그 세심하고도 단단한 안목 말이다.

네비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