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2025. 11. 26by에그

2025년 11월 25일 화요일

이상일 감독의 <국보>를 봤다. 러닝타임 175분, 3시간을 들여야 볼 수 있다. 하지만 걱정도 잠시, 시간이 언제 흘러갔는지 모르게 영화가 끝났다. 잠깐도 눈을 뗄 수 없는 꽉 찬 영화였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공 키쿠오는 야쿠자의 아들이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키쿠오는 아버지를 잃는다. 마침 가부키 배우로써 그의 재능을 알아본 가부키 거장 한지로는 키쿠오를 자신의 집에 들여 제자로 삼는다. 한지로에게는 그의 대를 이어 가부키 배우가 될 아들 슌스케가 있었고, 키쿠오와 슌스케는 친구이자 라이벌로 성장하게 된다.

이 영화의 매력포인트는 단연 가부키 공연이다. 가부키 분장을 한 사람의 사진이나 캐릭터는 많이 봤지만 가부키 공연을 본 적은 처음이다. 화려한 의상과 무대장치들, 그러나 지나치게 절제된 몸짓, 또다시 그와 대비되는 과장된 목소리들이 알 수 없는 감정들을 불러일으킨다. 화면이 아닌 실제였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다닌다.

하지만 결국 일기를 쓰게 만든 주제는 '전통'이다. 재능은 있지만 핏줄이 없는 키쿠오와 실력은 키쿠오에 비해 떨어지지만 핏줄을 이은 슌스케.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고 실력을 인정받은 뒤로도 핏줄과 관련한 가십은 끊이지 않는다. 오죽하면 키쿠오가 슌스케에게 "네 피를 컵에 담아 벌컥벌컥 마시고 싶다."라는 말까지 할까.

사라져가는 전통의 명맥을 잇는 건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그 조건이 핏줄이어야 한다는 건 악습임이 틀림없다. 그 이유는 영화에서도 찾을 수 있다. 키쿠오는 물론 슌스케조차 행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슌스케는 "나는 왜 가부키 집안에 태어난걸까."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누구를 위한 풍습인가.

핏줄이란건 도대체 뭘까. 어쩌면, 생각의 비약이 너무 심한걸지도 모르지만, 유전자 검사가 없던 시절, '내 자식이 맞는가'에 대한 집착의 강도와 더불어 '아버지의 자식임을 인증' 해내는데 대한 집착이었던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핏줄과는 살짝 다른 방향으로, 평등에 대한 고민도 한다. 키쿠오는 분명 재능이 있고 그에 뒤지지않는 연습량과 고민으로 최고의 연기를 펼친다. 한지로에게 인정받아 그 예명을 물려받기도 한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또 하나 있다. 이른바 업계 원로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한 것이다. 키쿠오를 슌스케의 모든 것을 빼앗은 이른바 도둑이라 칭하며 무대에 설 수 없게 만든다. 반면 10여년간 무대를 떠났다 돌아온 슌스케는 핏줄을 이유로 무대에 단번에 복귀하고 상도 받는다. 애초 출발선부터 달랐던거다. 그들은 무엇을 지키려 한걸까. 이게 어디 가부키 업계만의 일일까.

에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