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쑥! 아무 경고도 없이 머릿속에 '그 장면'이 재생되었다.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누워 있다가 나도 모르게 이불킥을 해버렸다. “아, 정말 왜 그랬을까…”
그때의 내가 너무 미숙해서, 한 대 콕 쥐어박고 싶을 만큼
부끄럽다.
아, 이불킥은 진짜 이렇게 예고 없이 찾아온다니까!
직장인 뮤지컬 모임에 참여했을 때의 일이 그렇다.
다들 바쁜 와중에도 일주일에 두 번씩 모여 2시간씩 연습하며 각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연출가님은 조용히 지켜보고 계셨고, 나는 혼자 열정에 불타올랐다. 전업 배우도 아닌데 집에서도, 출퇴근길에서도 안무를 따라 하고 대사를 중얼거리며 “첫 공연, 정말 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앞서 나갔다. 문제는 그 속도와 열정으로 모두가 함께해주길 바랐다는
점이었다.
공연을 2주 앞둔 어느 날, 아직 안무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사람들, 짧은 대사조차 헷갈려 하는 사람들을 보며 불안한
마음이 솟구쳤다. 결국 “이래서는 공연 못 올린다, 제대로 해야 한다”고 단원들에게 쓴소리를 하고 말았다.
연출가님도 조용히 지켜보고 계셨는데 내가 뭘 안다고 나섰
을까. 생각할수록 얼굴이 뜨거웠고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 나는 오만했고, 미숙했다.
내가 느꼈던 조급함과 불안감은 온전히 나의 것이었다.
그 감정을 진심 어린 조언이라는 착각 속에 다른 사람에게 날카롭게 던졌던 것이 부끄러움으로 남았다.
단원들의 사정이나 속도를 이해하기보다 조급하고 불안했던 내 마음을 그대로 드러냈던 거였다. 내 기준을 상대에게 강요했다는 걸 깨닫고 나서 스스로에게 많이 실망했다.
다행히 단원들이 내 진심을 헤아려주었고, 우리는 공연을 무
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 시절의 경험 덕분에 '함께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었다.
부끄러움은 단순히 잘못한 일을 떠올리는 게 아니다.
내 기대와 현실, 그리고 관계 속에서 찾아오는 복합적인
감정이다. 과거의 나는 내 기준만 믿고 다른 사람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은 채 내 마음을 강요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 부끄러움을 마주하며 타인의 속도를 존중하고, 나와 다른
배경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매 순간 되새기고 있다.
'그때 내가 참 미숙했지' 하고 질책하기보다,서툴렀던
그때의 나를 이해하고 용서하려 한다. 어느 날 불쑥 떠오르는 이불킥하는 순간이 따뜻한 기억으로 남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