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7일 월요일
-독서모임 후 잔상
독서모임에서 영화 [프랑켄슈타인] 이야기가 있었다.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단편들을 듣고 드는 생각이 있다.
영화에서는 프랑켄슈타인의 어두운 어릴적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폭력적인,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아버지가 있었고, 그 기억들이 프랑켄슈타인의 어떤 내면을 형성했을 것이란 이야기였다.
나는 이 이야기에 분노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프랑켄슈타인은 mankind에서 man을 상징하는 캐릭터이고 그들을 비판하는 이야기이다. 이 책이 출간 당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이슈가 되었던 이유도 그때문이다. 하지만 이 프랑켄슈타인에게 어두운 과거가 있었다는 각색은 프랑켄슈타인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다. 그 행동에 '어쩔수가없다'는 변명을 허용하는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 변명은 타당하지도 않고 옳지도 않다. 과거 흑인을 노예로 삼고 거래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법률을 만든 이들에게 '그럴수밖에없다'는 변명을 허용하지 않는 것과 같다. 과거 조선을 식민지로 삼고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없애고 자신들의 사상을 교육했던 이들이 말하는 '그럴수밖에없었다'는 변명에 우리들이 분노하는 것과 같다.
프랑켄슈타인이 만든 창조물은 창작의도가 어땠건간에 약자에게 피해를 입히는 존재다. 아이에게, 여성에게, 노인에게 피해를 입힌다. man에게는 직접적인 피해를 입히지 않았다. 그런 man이 man에게 스스로 면죄부를 주는 행태를 용납하여서는 안 된다.
영화의 말미에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창조물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한다. 그는 누구에게 미안하다 말한 것인가. 정말 그의 창조물에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의 미안하다는 말의 상대는 관객이다. 이 부분도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영화제작자들은 관객을 man으로 상정한다. 이 부분에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그들은 감동에 겨워할 것이다. 하지만 '감정적'이고 '변덕스러운' 이들은 이 부분에서 감동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니 당연히 감동스러워하라 요구한다. 나는 이것을 예술의 탈을 쓴 가스라이팅이라 생각한다.
물론 나는 영화를 보지 않았다. 혹여나 내 글을 읽고 영화를 보았다 느끼면 안 된다. 영화가 궁금한 분들은 직접 영화를 관람하여야 한다. 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기에 가까운 글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에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