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1월, 가을의 끝자락과 겨울의 시작이 맞닿을 즈음이면 우리 집은 늘 겨울맞이 준비로 분주해진다.
환절기용 이불은 두툼한 솜이불로 갈아 끼워지고, 옷장에는 보기만 해도 포근해지는 겨울옷들이 차곡차곡 들어선다.
따뜻한 차를 언제든 마실 수 있도록 찻장에는 좋아하는 찻잎을 넉넉히 채워 넣고, 아이들을 위해 쇼콜라쇼(핫초코) 가루와 마시멜로도 듬뿍 사다 둔다.
동네 어귀에서는 슈미네(벽난로)에 나무를 태우는 냄새가 솔솔 풍기기 시작한다.
그 냄새를 맡으면 ‘아, 또 겨울이 오는구나’ 하고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렇게 겨울 준비를 마치고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데, 동네가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우당탕, 우당탕—간간히 작은 비명 소리도 들려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옆집에 생쥐가 들어와 난리가 난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앞집, 뒷집 할 것 없이 생쥐가 나타났다며 동네가 떠들썩했다.
“소파에 누워 있는데 사각사각 소리가 나길래 둘러봤더니, 아니 글쎄 생쥐가 소파 안에 살고 있더라고!”
“생쥐는 못 봤는데, 치워도 치워도 똥이 있는 걸 보니 아직 우리 집에 있는 게 분명해.”
사람들의 경험담이 줄줄이 터져 나왔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프랑스는 생쥐가 많기로 악명 높은 곳이니까.
조용하고 평화롭던 작은 소도시가 어느새 생쥐 소동으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생쥐덫을 사고,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일종의 연대감을 형성해 갔다.
어느 저녁, 해가 저물 무렵 2층 창문에서 마당을 내려다보는데
검은 그림자들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우리 집 마당에도 생쥐가 여러 마리 살고 있는 듯했다.
아침에 마당을 자세히 보니 구석구석 작은 구멍들이 뚫려 있었다.
그것이 바로 생쥐가 드나드는 쥐구멍이라고 했다.
결국 우리 집도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구멍을 흙으로 메우고 물을 뿌리며 막아 보았지만,
다음 날이면 또 다른 곳에 새로운 구멍이 생겨 있었다.
우리는 막고, 생쥐는 다시 파고…
이 끝없는 도돌이표 같은 싸움에 어느 순간 익숙해져 버렸다.
우리 마당에 사는 생쥐는 도시쥐와 달리 아주 작은 시골쥐였다.
(이전까지는 생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
모습은 동화작가 이와무라 카즈오의 그림책에 등장하는 귀여운 생쥐 가족과 닮아 있었다.
이사 온 지 1년이나 되었는데 왜 이제야 나타난 걸까 생각해 보았다.
최근 집 옆의 옥수수밭이 헐리고 건설이 시작되었는데,
아마 그곳에서 살던 생쥐들이 터전을 잃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흘러온 듯했다.
야행성이라지만 우리 집 마당의 생쥐들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출몰했다.
알아보니 겨울을 나기 위해 바쁘게 준비하는 시기라 그렇다고 했다.
추운 계절 동안 새끼들을 지키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을 생쥐 가족을 떠올리니
마음이 괜스레 시끌시끌해졌다.
누군가 말했다.
“세상의 모든 생명은 서로 더불어 살아가지만, 오직 인간만이 그것을 거부한다.”
인간은 집에 벌레가 들어오면 죽여 버리고,
아무 해를 끼치지 않는 아름다운 새가 들어와도 결국은 쫓아낸다고.
우리는 작은 쥐구멍 앞에 포도알 하나를 놓아 두었다.
다음 날, 포도알은 소리 없이 사라져 있었다.
‘이건 누가 두고 갔을까?’
생쥐 가족의 속삭임이 들려오는 듯했다.
우리는 올 겨울동안 이 작은 이웃들을 마당에서 쫒아내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올해 겨울역시 우리모두 평화롭고 건강하게 지나가기를….
프랑스의 소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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