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니아

2025. 11. 10by에그

2025년 11월 9일 일요일

메가박스에서 <부고니아>를 봤다. 사전 정보 없이 보러 간 나는 또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다. 유혈이 낭자한 영화는 좋아하지 않는데 말이다. 이왕 봤으니 정리를 해보자.

테디는 미셸을 외계인이라 확신한다. 지구를 지키겠다는 생각에 사촌 돈과 함께 그녀를 납치한다. 그녀가 외계인이 확실한지, 어떤 목적으로 지구에 온 것인지 알아내기 위해 고문을 하고 그 끝에 외계인의 함선에 올라탈 기회를 잡는다. 이렇게 쓰니 흔한 공상과학영화 같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그 안에 다른 이야기가 들어 있다. 

테디는 꿀벌을 키우고 있다. 그는 최근 꿀벌 군집붕괴현상으로 근심하고 있는데, 그 원인으로 한 제약회사의 살충제를 지목한다. 또, 테디의 어머니는 이 회사와 어떤 이유로 관련이 있는데, 아마도 회사로부터 피해를 입고 치료금과 보상금을 받지만 건강은 회복할 수 없는 상태다. 테디는 그 제약회사의 회장 미셸을 지구를 침략하러 온 외계인이라 확신한다. 이 대목에서 환경파괴는 물론 거대자본 식품산업에 대한 우려도 살짝 비친다.

그 이후 화면을 가득 채우는 다소 폭력적이고 잔인한 장면들에 멀미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이렇게나 많은 피를 쓸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테디라는 캐릭터였다. 테디는 어딘가 좀 다르다. 잘 씻기는 하는 건지 지저분한 옷을 입고 다니지만 맑은 정신을 유지해야 한다며 샐러드를 먹고 게임을 하지 않으며 자위도 하지 않는다. 현대문명을 뇌를 오염시키는 자극이라 말하며 그것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미셸은 다르게 대한다. "그 얼굴이 45살의 얼굴이 맞느냐", "여기가 스파인줄 아느냐"며 전형적인 모습으로 미셸을 대한다. 심지어는 가슴이 훤히 드러나는 드레스를 준비한다. 왜 여성을 바라보는, 대하는 태도는 이렇게나 고정적일까.

결국은 테디가 맞고 테디가 이기는 이야기다. 능력있고 성공한 여성인 미셸은 선망과 두려움의 상징으로 팜 파탈, 즉 괴물이 되고 어쩌면 유일한 지성이었던 테디는 마지막까지 그녀에게 한 방 먹인다. 

그리고 안드로메다인을 묘사한 모습도 다소 실망스러웠다. 알 수 없는 의상과 함선의 인테리어, 뒤뚱거리는 듯한 걸음걸이, 마치 원시적인 모습을 의도적으로 보여주는 듯한 끈적한 느낌의 액체들과 바닥까지.

엠마 스톤의 연기가 얼마나 멋있었는지와는 별개로 아쉬움이 남는 영화였다.

에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