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사고였을 뿐

2025. 10. 26by에그

2025년 10월 26일 일요일

인디플러스포항에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그저 사고였을 뿐>을 관람했다. 2025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과거에 정치적인 이유로 수감생활을 했던 주인공은 우연히 잊을 수 없는 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는 바로 자신을 고문했던 사람의 특이한 발소리다. 하지만 얼굴을 모르는 상태에서 발소리만으로 그 사람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이에 주인공은 그 사실을 확인해 줄 만한 다른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비슷한 시기 수감생활을 했던 여럿이 모여 이 정치범의 거취에 대해 상의하는 장면이 인상깊었다. 등장인물들의 대화 소재는 '정치범의 처분'이지만 정작 화면에는 정치범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수감생활을 했던 이들의 좌절과 분노, 다툼, 절망들만이 비춰질 뿐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지옥을 만드는 건 어떤 대상이 아닌 그 대상을 해석하는 나, 그리고 사회이다. 하지만 그건 그냥 사고가 아니다.'

쉽지 않은 이야기다. 누군가는 '그저 사고였을 뿐'이라 하지만 누군가는 '평생을 잊을 수 없는 발소리'이다. 싯다르타에서는 '강을 건네 준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여인을 등에 업고 있느냐'라고 하지만, 또 '나에게 고문을 가하는 사람도 누군가의 남편이고 누군가의 아빠이더라'라고 하면서 용서했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정말 쉽지 않은 이야기다. 정말로 지옥을 만드는 건 잊지 못하는, 용서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있다는 말이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그건 절대로 '그냥 지나간 일이니 여기서 그만 잊고 내일을 준비하자'는 속 편한 얘기를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전에 우리는, 나는, 피해자의 이야기를 정말로 들은 적이 있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어쩌면 이 영화도 그저 들어주기를 바라는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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