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만 좋은 명함을 호기롭게 내팽개치고 백수가 된 스물여섯. 평일 낮 한적한 수영장에서 레인에 가느다랗게 매달려 둥둥 떠 있던 내가 종종 떠오른다. 익사로 오해받는 게 귀찮아 가끔 배를 뒤집어 수영장 천장을 관망했다. 빈 껍데기 육신과 텅 빈 동공으로 보내는 생체신호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도무지 맥락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꿈을 자주 꾼다. 무의식의 세계에서 나는 손가락 하나에 의지한 채로 벼랑 끝에 매달려 있다. 불완전한 리듬으로 포물선을 그리는 메트로놈처럼 대롱대롱. 신경 중추 어딘가에선 똑딱거리는 시한폭탄이 끊임없이 버저를 울린다. 불안은 보이지 않지만 나만 감각하는 여섯 번째 발가락 같다.
등을 긁어 달라 보채던 아이가 잠들면 스멀스멀 침대 밖을 기어 나와 노트북을 연다. 라디오 삼아, 카페의 백색 소음 삼아 텔레비전을 켠다. '나는 지금 일하는 게 아니야' '혼자가 아니야' 뇌를 속이면서. 그렇게 각성된 상태로 0%까지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일상. 지금이 몇 시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더는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할 일은 세균처럼 증식하고 집안일은 아무리 해도 줄지 않는 마법을 부린다. 불안을 자석 삼아 이미 가루가 되어 흩날리는 집중력을 끌어 모은다. 의식이 깨어 있는 모든 시간을 일에 몰아 써도 부족하다 보니 낮과 밤, 주중과 주말의 경계가 사라진 지 오래. 50개쯤 떠 있는 인터넷 창을 끌 엄두는 내지 못한 채 노트북을 덮는 일상과 꼭 닮아간다.
거실의 핀 조명을 끄고 침실까지 걸어가는 복도는 가시덤불이 따로 없다. 아이 가방, 개켜 둔 빨래, 쌓인 책더미에 헛발질하거나 넘어지거나. 안방 문고리를 잡는 순간 오늘의 퀘스트는 비로소 종료된다. 이제 짧은 평화를 누릴 차례. 이불을 돌돌 말고 있는 아이를 꼭 끌어안고 다급히 정수리 냄새를 킁킁 맡는다.
어른보다 배로 빨리 뛰는 아이의 심박수는 안도감을 급속 충전시키는 데시벨이다. 이 순간을 위해 오늘을 달려온 것처럼 행복이 밀려온다. 불과 몇 시간 전에 키즈 샴푸로 박박 감긴 머리에서 보송한 아가 향기 대신 고소한 어린이 냄새가 솔솔 올라온다. 콩나물처럼 매일 쑥쑥 자라는 아이가 더는 엄마 품이 필요 없을까 노심초사하며 불안을 끌어안는다. 유한한 시간의 경계에서 무한한 사랑이 확장되는 아이러니.
안테나처럼 쫑긋하고 삐져나온 아이의 머리칼은 심장에 해롭다. '어쩜 이렇게 귀여울 수 있지!' 음소거 모드로 끅끅 웃음을 삼키는 동안 아드레날린이 솟구친다. 엄마가 필요한 시절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데 알뜰하게 독점해야지. 자다가 갑자기 화들짝 놀라는 아이를 다독일 때면 나직하게 속삭인다. '무서운 꿈은 엄마가 꿀게. 호러, 서스펜서, 스릴러는 내 전문인 걸. 달에서 미끄럼틀 타고 노니는 꿈만 꾸렴. 문토끼야.'
서울행 첫 기차와 포항행 마지막 버스에 오를 때마다 탑승 시간을 타임스탬프로 남긴다. 우리에게 오늘만 존재하는 것처럼. 동시에 백년 뒤에도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양극단의 염려를 지렛대 삼아. 애착을 넘어 아이에게 집착할까봐 열심히 일한다. 달빛에 반짝거리는 문토끼의 톡 튀어나온 이마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린다. 말캉한 네 손을 잡고 긴 하루를 마감할 수 있다면, 내 천국은 네 옆이지. 왕복 700km가 대수랴.
youme
너와 나, 합해서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