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느린, 관찰의 즐거움

2025. 08. 11by기록하는비꽃

비 오는 날 창문 앞에 서 있으면, 유리 위로 흐르는 빗방울이 저마다 다른 속도로 떨어진다. 어떤 것은 서두르듯 곧장 내려오고, 어떤 것은 머뭇거리다 옆길로 새어 간다. 한 방울이 다른 방울과 부딪혀 합쳐지면 속도가 빨라지고, 또 다른 방울은 제 길을 잃은 듯 위태롭게 흔들리다 멈춘다. 그 속도와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 의미 없던 유리창이 작은 세상처럼 보인다. 무심한 풍경 속에서도 오래 바라보면 이야기가 생기고, 이야기가 생기면 마음이 조금은 단단해진다. 어쩌면 살아가는 힘은 거창한 계획보다, 이렇게 오래 바라보는 순간에서 피어오르는지도 모른다. 

 


 

그 풍경 앞에 서 있으면 먼저 나무늘보가 떠오른다. 하루 15시간 이상을 나뭇가지에 매달려 보내는 동물. 움직임이 느린 것은 성격이 아니라 생존 방식일 것이다. 빠르게 움직이면 포식자의 눈에 띄지만, 느리게 움직이면 숲의 그림자 속에 녹아든다. 나무늘보는 서두르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지킨다. 빗방울의 흐름을 천천히 따라가며 시간을 늘리는 일도 그렇다. 다른 이들이 바삐 하루를 지나칠 때, 이쪽에서는 느린 속도로 세상을 지켜본다. 나무늘보가 하루 동안 나뭇잎 몇 장만을 먹으며 버티듯, 느림 속에서도 삶은 충분히 자란다.

 

연예인을 좋아하게 된 건 단순한 취향 같았지만, 그 시작에도 이런 관찰이 있었다. 어느 날, 무대 영상을 보다가 노래가 끝난 직후의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조명이 꺼지기 전, 살짝 굳은 어깨, 깊게 들이마신 숨, 그리고 짧게 번진 미소. 팬들은 그 무대를 성공적이라고 말했지만, 그 짧은 틈에서 다른 이야기가 보였다. 안도와 피로, 그리고 아직 무대 밖으로 나가지 않은 긴장감. 그 순간이 무대의 완성보다 더 마음을 끌었다. 그때부터 화면을 멈추고, 다시 돌려보고, 표정과 손짓을 기억하는 일은 달팽이처럼 느린 여정이 되었다.

 


 

달팽이는 이동 속도가 느리다. 그러나 그 느림은 멈춤이 아니다. 촉각으로 길을 탐색하고, 껍질 속에서 몸을 보호하며, 한 번 나아간 자리는 점액의 길로 표시해 둔다. 달팽이는 제 속도로 앞으로 나아간다. 관찰도 그렇다. 같은 장면을 반복해 보는 일은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지만, 그 안에서 전보다 깊은 결을 읽어낸다. 그 작은 전진이 쌓이면, 어느 순간 장면의 숨은 의미가 드러난다.

 

드라마를 볼 때도 장면 속 대사만큼이나 표정과 움직임에 눈이 갔다. 오래전 방영된 한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지친 얼굴로 커피를 마시는 장면이 있었다. 컵을 잡은 손이 미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극 중 인물의 대사나 줄거리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 그 떨림만은 오래 남았다. 다시 찾아본 장면에서, 그 떨림은 대본에 없던 배우의 실제 반응이었다. 감독의 지시가 아닌, 그날의 피로와 감정이 만들어 낸 찰나였다. 판다가 대나무를 씹다 한참을 멈추고, 그저 바람을 느끼는 모습처럼, 그 배우도 대사와 대사 사이의 틈에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판다는 하루 절반을 먹는 데 쓴다. 서두르지 않는다. 대나무를 오래 씹는 그 반복 속에서 하루가 흘러간다. 판다의 하루는 단조로워 보이지만, 그 느린 리듬이 몸을 지탱하고 생명을 이어준다. 공부도 그렇다. 언어를 배우면서 단어 하나의 뉘앙스 차이를 깨닫는 순간들이 있었다. ‘걷다걸어가다가 주는 그림이 다른 것처럼, 비슷해 보이는 말 속에도 깊이가 달랐다. 책 속 문장을 외우는 것보다, 왜 그 단어가 거기에 놓였는지를 생각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숨은 의도를 발견하는 순간, 공부는 시험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 세상을 번역하는 일이 된다. 달팽이가 한 뼘의 거리를 오래 걸어가듯, 단어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은 속도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여정의 끝에는 오래 버틸 수 있는 언어의 힘이 남는다.

 

요즘 가장 오래 바라보는 대상은 아이들이다. 우간다에서 5학년과 3학년이 된 두 아이는 각자의 속도로 자라나고 있다. 큰아이는 질문이 부쩍 늘었다. 예전에는 이건 뭐야?’ ‘왜 그래?’로 끝나던 호기심이, 어느 순간부터 내가 커서 할 일은 어떻게 정해?’ ‘어떤 공부를 하는 게 좋을까?’처럼 미래를 묻고, 구체적인 상황을 상상하며 던지는 질문으로 바뀌었다. 숙제를 하다 말고 왜 이 단어는 여기에 쓰였을까?”라고 물을 때면, 교과서 너머의 세상을 함께 들여다보게 된다. 작은아이는 관찰보다 모험을 좋아한다. 하지만 가끔 창밖의 개미 행렬을 오래 지켜보거나, 떨어진 잎사귀의 결을 손끝으로 느끼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면 마음속으로 조용히 기록을 남긴다.

 

아이들의 성장은 판다와 닮았다. 하루 대부분을 먹고 쉬는 판다의 하루는 눈에 띄는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계절이 바뀔 때마다 몸집이 커져 있다. 아이들의 하루하루도 그렇다. 특별한 사건이 없는 날들이 모여, 어느새 생각이 깊어지고 몸이 자란다.

 

관찰은 시간을 느리게 만든다. 남들은 이미 지나간 장면에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사소해 보이는 디테일을 오래 붙잡게 한다. 하지만 그 느림 속에서만 들리는 목소리가 있다. 무대 위 가수의 호흡, 드라마 속 떨리는 손, 책 속 단어의 질감, 그리고 아이들이 던지는 예기치 못한 질문. 나무늘보가 하루를 건너는 동안에도 숲이 변하듯, 달팽이가 한 뼘을 기어가는 동안에도 계절이 바뀌듯, 판다가 대나무를 씹는 동안에도 시간이 흐르듯, 이 느린 하루들이 모여 삶의 결을 만든다. 오래, 세밀하게, 그리고 기꺼이 바라보는 일. 다소 느린 걸음으로 마주한 관찰의 기쁨이 끝내 삶을 이어주는 힘이 된다.

기록하는비꽃

작가

우간다에서의 일상을 글로 씁니다. 『일상의 평범함을 깨우다』를 펴냈고, <포포포매거진 뉴스레터>에 삶을 기록 중입니다. 좋아하는 것을 덕질하며, 해낙낙하게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