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태양이 온몸을 따갑게 내리쬐는 계절, 다시 한번의 여름이 스페인의 마요르카 섬에 찾아왔다.
이 바람 부는 섬에는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수많은 전설들이 바다와 함께 숨 쉬고 있다.
반은 인간, 반은 바다의 신비를 품은 인어 이야기부터, 옛 해적들이 숨겨 놓았다는 보물들, 그리고 거대한 용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동굴까지.
그렇게 지중해의 작은 섬, 그 신비로운 전설들을 따라가다 보면 해안가 끝자락에 자리한 아주 오래된 등대들을 만날 수 있다.
수백 년 동안 묵묵히 바다 위를 항해하는 이들의 길잡이가 되어 준 수많은 등대들을.
사실 등대의 모습은 어딜 가나 비슷비슷할 것이다.
긴 건물 위 꼭대기에 불빛이 나는 램프가 달려 있는 모습.
어쩌면 식상할지도 모를 그 등대를 보러 간 것은 순전히 아이들의 의견 때문이었다.
그렇게 별 기대 없이 방문한 카프테페라의 등대는 매우 낡고 초라한 등대였다.
화려하지도, 위풍당당하지도 않은 그 모습은 오히려 군데군데 세월의 상처가 깊이 배어 있는 소박한 모습이었다.
나는 그런 등대에게서 내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수십 년 동안 혼자서 거센 비바람과 싸워 가며 이곳을 지켜 낸 담대한 모습,
자식을 위해 자신의 성채가 상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불태운 뜨거운 사랑과 희생의 모습 말이다.
옛날 옛적, 이 등대에는 한 명의 헌신적인 등대지기가 살았다고 한다.
그는 매일 밤 등대 불빛을 밝혀, 폭풍우 속에서도 배들이 암초와 위험한 해안선을 피해 안전하게 항해하도록 애썼다.
어느 거센 폭풍이 몰아치는 밤, 작은 어선 한 척이 등대 근처 암초로 다가왔다.
등대지기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고 달려가 등불을 더 환하게 밝혔다.
그렇게 그 빛을 따라 어선은 가까스로 안전한 항로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폭풍이 지나간 후, 등대지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그가 바다에 희생되었다고 믿었고, 이후로도 폭풍우가 몰아칠 때면 그의 영혼이 등대를 지키며 배들을 안전하게 인도한다고 전해진다.
이 이야기는 내 마음 깊은 곳을 울린다.
낡고 초라해 보여도, 누군가의 끝없는 사랑과 희생이 있어 이토록 오래도록 빛날 수 있었던 등대.
그 불빛은 어머니가 밤새워 지켜 준 그녀의 따뜻한 품과 닮아 있다.
온 세상이 거센 바람에 흔들려도 흔들리지 않고 꿋꿋이 자리를 지켜 낸 사랑과 믿음.
내 어머니가 밝혀 놓은 빛을 따라 걷던 나도, 어느덧 세월이 흘러 이젠 누군가의 어머니가 되었고
내 어머니의 어머니가 밝히던 등대의 불빛을 이제는 내가 이어받아 꺼지지 않을 빛으로 지켜 보려고 한다.
인생의 폭풍우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게 길잡이를 해 주는 등대처럼, 너의 인생에 꺼지지 않을 사랑과 응원의 마음을 담아.
뜨거운 태양 아래, 끝없는 파도 앞에서도 결코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나를 태워 보려 한다.
프랑스의 소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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