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륵드륵, 분홍색 자전거 페달 위로
너의 반짝이는 두 다리가 힘차게 내려앉았다가,
살며시 물러나기를 반복한다.
작은 몸에 꼭 맞는 자전거,
그 위의 동그란 핸들엔
별처럼 반짝이는 너의 손이 야무지게 얹혀 있다.
바람은 머리칼을 흔들고,
그 사이로 나비처럼 가벼운 웃음이 스쳐 지나간다.
잠시, 세상은 너에게만
무게 없이 작동하는 듯 보인다.
언젠가 나도 그랬다.
나 역시 같은 페달을 밟았고,
같은 핸들을 붙잡고 있었다.
하지만 내 손은, 막 태어난 아이의 주먹처럼
무언가를 움켜쥐듯, 절망스럽게 굳어 있었다.
그날도 바람은 불었다.
머리칼 사이로 스며드는 공기 속에서
이유 없는 해방감이 문득 밀려왔고,
내 안의 무언가에 조용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나는 생각하는 것을 허락받지 못한 채 자랐다.
질문하지 않는 아이,
튀지 않는 존재로 남기를 바라는 어른들.
모난 구석 없이 다듬어진 삶을
‘예쁘다’는 말로 포장해 건네는 위선 속에서
나는 조금씩 스스로를 지워나갔다.
개성은 이상함으로,
침묵은 미덕으로 치환되던 시간들.
너도 언젠가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될까.
우리의 눈빛과 말투가 닮았듯,
삶의 궤도마저 닮아가야만 하는 걸까.
혹은, 닮도록 강요받게 될까.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말.
여자답게 행동하라는 말.
속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말.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말.
그 말들은 누구의 것이었고,
그 기준은 무엇을 위해 세워졌던 걸까.
굴레는 누군가 만들어놓은 것이고,
우리는 그 안에서 태어난 존재들이다.
처음부터 그 안에 있었기에,
바깥을 상상하는 법조차 배우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나 폭력적이다.
우리는 그 폭력에 길들여졌다.
폭력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우리는 순응을 선택하고,
매일 아침 기꺼이 만원 버스에 몸을 구겨 넣는다.
진심 없는 대화를 흘리듯 반복하고,
『행복을 찾아서』 같은 책을 읽으며
언젠가 나에게도 행복이 도착하리라는
희미한 희망 하나로 하루를 살아간다.
이 대물림되는 인간의 삶이
이젠, 너에게도 주어졌다.
언젠가,
네 안에 무언가 금이 가는 걸 느낀다면
부디, 너는
기꺼이 그곳을 박차고 나오기를.
폭력에 길들지 않은 삶을
아름답고, 자유롭게 살아가기를.
너는,
나와 같지 않기를
프랑스의 소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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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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