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몸’이라는 휴직의 첫번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부지런히 운동을 했습니다. 육아와 병행하는 일상 이었지만, 그래도 최대한 짬을 내어 운동을 하면서 건강해지는 모습에 도파민 분비를 느끼며 행복하게 보내고 있었습니다.
평소와 다름없는 어느 늦은 아침이었습니다. 첫째를 등원시키고 주어진 짤막한 여유시간을 활용해서 익숙한 코스대로 러닝을 시작했어요. 당산에서 여의도로 이어지는 코스, 날이 풀려서 여유로운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습니다. 러닝 중반 여의도 윤중로에 진입하니, 이제 막 만개하기 시작한 벚꽃이 세상을 하얗게 물들이고 있었어요.
그 때 제 눈 앞에 너무나도 다른 두 부류의 사람들이 한 장면에 들어왔습니다. 한 쪽에는 단정한 차림의 국회 직장인들이 굳은 표정으로 바삐 움직이고 있었고, 정 반대편에는 편안한 옷을 걸쳐 입은 사람들이 가족들과 한가로이 샛강 옆을 거닐며 봄의 풍광을 만끽하고 있었죠. 사실 그닥 특별한 풍경은 아닙니다.
저는 잠시 달리는 걸음을 멈추고 카메라로 주변을 찍었습니다. 이 사진을 보며, 그 순간의 감정을 기억하고 싶었거든요. 무언가 제 인생에 처음 다가온 특별한 느낌이라는 걸 직감했기 때문 이었던 것 같아요.
벤치에 앉아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9 to 6의 일상을 벗어난 늦은 아침, 벚꽃이 만개한 길을 상쾌하게 달리고 있는 제 모습이 보였습니다. 몇 달 전까지 건너편 직장인들 틈에 있던 저는 지금 샛강을 여유 롭게 거닐고 있는 그들 속으로 들어와 있었습니다.
휴직 이후 설국열차 밖으로 나와서 일반 직장인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을 처음 마주했을 때 처음 느꼈던 것과 비슷했지만, 조금 달랐던 부분이 있습니다.
‘경제적 자유를 얻게 된다면.. 이런 느낌 인 걸까?’
육아휴직 기간 한정 1년 짜리 체험판. 그 자유의 냄새를 맡으며 저는 ‘체험판 경제적 자유‘라는 단어를 머릿 속으로 떠올렸습니다.
경제적 자유.
이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단어에서 풍기는 뭔가 가슴벅찬 느낌에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어떤가요? 너무 흔해서 듣기만 해도 피로감이 느껴지곤 합니다.
저 역시도 그동안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외치던 '경제적 자유'라는 말을 아무 생각 없이 되뇌었습니다. 그냥 입버릇 처럼 술자리 안주로 이야기 할 뿐이었죠.
”언젠가 나도 경제적 자유를 이루고 싶다~“
그렇게 이야기 하면서도, 도대체 얼마를 벌어야 자유로워진다는 건지, 돈을 많이 갖는다는 것 자체가 왜 행복한 건지 한 번도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 자유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던 거죠.
목적지가 없는 마라톤 같은 느낌일까요?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 얼만큼 더 가야하는지 모르는 채 무작정 달리는 것과 같은 것이죠. 그렇게 가다간 결국 멈추게 됩니다. 두루뭉술하고 구체적이지 않은 목표에는 구체적 활동도 계획도 세워질 수 없는 것이니 까요.
하지만 그날,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저에게 경제적 자유는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것이라고 칭할 수 있는 1차원적인 목표가 아니었어요. 그 뒤에는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쏟아부어야하는 노동 투입 시간으로 부터의 자유, 내 남은 인생의 ‘시간’을 하고 싶은 활동들로 채워나갈 수 있는 자유가 숨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영원히 늙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이렇게 까지 아등바등 돈을 벌 필요가 있나요? 결국 우리의 시간은 한정돼있고, 그 시간을 희생하지 않고 누리기 위한 수단으로 ‘돈’이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제가 진정으로 부자가 되어야 하는, 스스로도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찾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시간적 자유를 통해 진정한 삶의 여유를 누리는 것이었어요. 제 인생의 시간을 생존 노동으로 소비하지 않는 것 말이에요.
경제적 자유를 꿈꾸시나요? 여러분이 정의하는 경제적 자유의 정의가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사실은, 제가 1년 동안 그 ‘시간적 자유’를 1년 한정판으로 체험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육아휴직이라는 특별한 기간을 통해 저는 '체험판 경제적 자유'라는 호사를 누리고 있었던 거죠.
넷플릭스 같은 각종 OTT 서비스에 Free trial 기간이 있듯이, 시간적 자유에도 체험판이 있다면 그게 바로 육아휴직 일겁니다. 물론 그 자유에 ‘육아’라는 의무가 붙기 때문에 온전한 자유를 누릴 순 없지만, 일반 직장인에게 주어지는 체험판 경제적 자유로는 현실적으로 유일한 기회인 것이죠.
어쨌든, 중요한 건 이겁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머리로만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경제적 자유라는 걸 찍먹으로나마 직접 체험해보게 됐다는 것이죠. 그러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평생 이렇게 살아야겠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지?‘
이런 삶을 꼭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마음속에 저절로 생겼고, 그 방법을 생각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저 둥둥 떠다니던 단어에 불과했던 경제적 자유. 그 너머에 시간적 자유가 있음을 깨닫게 되고, 그런 삶을 체험하면서, 두루뭉술했던 목표에 형체가 조금씩 뚜렷해지자 비로소 ACTION PLAN을 고민하는 단계로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
고기 맛도 먹어본 놈이 안다고, 맛을 보고 나니 그 맛을 그리워 만 하는게 아니라 계속 먹기 위한 방법들을 자연스럽게 생각해 보게 된 것이죠.
직장이라는 설국열차를 잠시 벗어난 기간 동안 자유의 냄새를 맡게된 건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후, 저는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어요. 지금의 이 여유로움을 불안한 마음으로 즐기기 보다는 이런 자유를 평생 누리기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지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왜 송충이는 솔잎만 먹어야 하나요?
내가 먹을 것은 솔잎 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다른 걸 먹을 수많은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다른 먹이도 많다는 걸 몰라서 안먹는게 아니라, 제대로 찾아보고 먹으려 노력하지 않는 것이죠. 지금 세상은 더 이상 송충이가 솔잎 만을 먹어야 하는 세상이 아닙니다. 각 잡고 찾아 보면 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아요.
송충이가 뽕잎을 먹어며 살아가려면, 제일 먼저 해야할 건 뽕잎을 일단 한 번 먹어 보는 겁니다. 먹어보고 맛있다는 걸 알아야 앞으로 뽕잎을 또 어떻게 먹을지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니까요. 육아휴직은 저라는 송충이가 뽕잎을 먹게 해준 바탕이 되어 준 것이죠.
육아휴직 예정자, 육아휴직자 여러분께서 휴직에 임하실 때, 이런 관점을 한 스푼만 태워보세요. 정신없는 일상 속에서 쉽진 않겠지만, 아이를 돌보는 단조로운 일상에 조금은 생기가 돌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휴직기간에 추천드리고 싶은 건, ‘왜‘를 찾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현실을 바꾸는건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행동을 하려면, 이유가 있어야 하죠. 달리 말하면, 해야할 이유가 만들어지면, 행동하게 됩니다.
육아휴직을 계기로 다르게 살게 된 제 삶의 분수령은 바로 앞서 말한 ‘왜‘를 깨닫게 된 시점입니다. 경제적 자유 너머에 시간적 자유가 있고, 그 자유를 몸소 체험했고, 뽕잎을 먹어 본 송충이가 된 시점 말이에요.
한편으로는 이런 깨달음도 설국열차 안에서 셀프 가스라이팅 하던 세상에서는 '언감생심'이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육아휴직이 외부 노이즈 없이 이런 고민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라고 제가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갭이어 (gap-year)라는 제도가 분명 존재하지만, 현실적으로 갭이어를 보낼 수 있는 직장인은 흔치 않기 때문이죠.
육아휴직자 그리고 육아휴직 예정자 여러분. 육아휴직 때는 한 번 다르게 살아보세요. 다르게 살아봐야, 다르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르게 살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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