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통해 비로소 나를

2025. 05. 28byyoume

 

 

 

 

3년을 못 버티고 이렇게 가는 건가. 한 몸이 되어 살아온 노트북이 자주 블랙아웃 된다. 딱 내 꼴 같다. 잠수교 아래 코만 겨우 내민 채로 간헐적 호흡 중인 꼬락서니.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해저에서 달음박질쳤건만 숨을 들이켜자마자 물귀신에게 발목을 잡히고 만다. 남은 에너지의 잔량이 바닥을 친지는 오래. 천 년 동안 지하에서 수련했어도 용이 되지 못하면 결국 이무기일 뿐이다.

 

"그 팀은 기술이 있으니 밸류를 20억 인정받기라도 했지. 대표님은 뭘 했어요? 그럴 거면 사업하지 말아야죠." 대꾸할 기력이 남지 않는 건지, 자기 객관화가 투철한 건지, 둘 다인지. 희끄무레한 시선으로 "그렇네요." 읊조릴 뿐이었다. 애초에 내가 사업할 깜냥이 있는지 고려할 여유 따윈 없었다. 대안이 없어 창업했다. 적을 두고 산 지 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퍼석하고 낯선 지역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해 버둥거릴 뿐.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건 모니터 앞에 나를 주저앉히고 실패를 학습하는 것뿐이다. 각종 제안서와 지원서, 내지 않으면 어마무시한 과태료를 매기겠다는 고지서와 문서에 매몰된 채로.

 

6년 동안 나는 무얼 했나. 저온 화상을 입기에 충분할 만큼 과열된 노트북만큼 뇌의 회로도 타들어 가고 있었다. 나를 너무 미워하지 말자고 되뇌면서도 자책만 늘어갔다. 성공하지 못한 자에게 발언권은 없었다. 지원사업이라는 명목하에 기관의 목표를 달성하는 시스템에 열 맞춰 나도 백지상태로 법인을 차렸다. 법인이라는 이유로 회사 주소 하나만 바꿔도 법무사 비용만 50만원. 궁여지책으로 법원 셀프 등기를 시작했다. 블로그를 탈탈 털고 수시로 온라인 등기소 콜센터에 전화로 사정하며 정보를 동냥했다. 무료 법률사무소를 찾아다니고 없는 인맥을 끌어 상담료를 깎았다.

 

외주 작업으로 근근이 회사를 유지하면 뭐 하나. 농담처럼 아직 인큐베이터에 있는 둘째라 말하던 잡지에 수혈하면 마이너스. 밑 빠진 독은 채워질 기미가 없다. 유명세가 곧 돈인 시대에 무명의 잡지는 서고의 종이 무덤의 왕릉이 되었다. 팔릴만한 상품으로 크지 못해 세상과 동떨어져 버린 가상의 둘째를 키우는 동안 현실의 아이는 내 뒤통수를 보며 자랐다. 엄마가 빨래를 너는 동안 침대에 간이책상을 올려두고는 노트북과 전원 코드까지 꽂아 둔다. 노트북 하나면 꽉 차는 작은 공간을 인형으로 꾸며 놓고는 "내가 엄마를 초대했어. 내 옆에서 일해!" 달려오는 아이를 꼭 안으며 억장이 무너진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너의 생애 가장 예쁜 시절을 이렇게 놓치나. 애석하게도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하루가 다르게 내복 바짓단이 쑥쑥 올라가는 너의 속도와는 반대로 나는 숨이 가쁘게 뛰어도 겨우 제자리를 맴돌 뿐이다. "엄마가 부족해서 미안해" "아니야 괜찮아" 우리는 함께 있어도 미안함과 그리움을 끌어안고 산다. 너를 지키기 위해 지금의 나를 지탱해야 한다고. 그 작은 등을 쓰다듬으며 나를 토닥인다. 일에 함몰된 엄마를 불러오는 방법을 아이는 저도 모르게 터득했다. 꽃봉우리 같은 손을 웅크려 내 뺨에 가져대고는 "엄마 힘내!"하고 싱긋 웃는다. 정지화면처럼 멍하니 아이를 바라본다.


분신. 나를 반으로 가르고 나온 아이를 보며 생각한다. 너는 나를 살리러 왔구나. "사랑해사랑해사랑해" 띄어쓰기 없는 속사포 랩과 무자비한 뽀뽀를 퍼부으며 꾹꾹 참고 있던 숨을 토해낸다. 너를 통해 비로소 나를 조금씩 사랑하게 되었다.

youme

너와 나, 합해서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