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간 한국에 다녀올 예정이다. ‘잠시’라는 단어를 붙였지만, 마음속 무게는 잠깐이 아니다. 이곳, 우간다에 익숙해진 몸과 마음을 다시 움직여야 한다는 것. 그 자체가 작은 이사 같고, 중형 프로젝트처럼 느껴진다. 떠날 채비를 한다는 것은 단순한 여권과 항공권, 짐 가방 이상의 일이다. 익숙한 일상을 잠시 멈추고, 낯익은 곳으로 되돌아간다는 역설적인 감정이 고개를 든다.
아이들은 벌써부터 신이 났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엄마, 한국 언제 가?” “치즈돈가스 꼭 먹으러 가자.” “키즈카페는 일주일에 한 번은 가야 해.”하는 말들로 하루가 시작된다. 그 말들에 웃음이 나면서도, 한편으론 마음이 이상하다. 이 들뜸에 쉽게 올라타지 못하는 자신을 보게 된다. 어른의 마음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설렘만큼이나 부담도 따라오기 때문이다.
사실, 1~2년 만에 한국에 가는 거라면 함께 들떴을 것이다. 아직도 코끝에 남은 도시의 공기, 지하철 안 사람들의 숨결, 편의점 문이 열릴 때의 띠링 소리 같은 것들이 실감 나게 떠올랐을 테니까. 그런데 5년이 넘었다. 시간이 흐른 만큼 몸도 감각도 이곳에 맞춰졌다. 어느새 여기의 먼지와 하늘, 속도와 공기에 익숙해졌다는 걸 느낀다. 그 익숙함 속에서 낯선 곳을 다시 찾아가는 일은, 어쩌면 방문이 아니라 이동에 가까운 감정이다.
경기도 안산 사동. 살았던 동네 이름이다. 익숙한 듯 낯설고, 낯선 듯 익숙한 이름. 서울에 여의도, 목동, 염창동에서 일하던 시절도 있었다. 점심시간이면 회사 주변 공원을 걸었고, 그곳에서 도시락을 먹던 기억, 퇴근길엔 마포대교를 건너던 풍경이 아직 머릿속에 선하다. 그땐 도시의 속도와 리듬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당연함조차 낯설게 느껴진다. 그 모든 것이 마치 오래된 필름처럼 빛이 바래고 있다. 기억은 남았지만, 그 속에서 살던 사람은 이제 조금은 달라졌다.
짐을 쌀 생각을 하면 한숨이 먼저 나온다. 어떤 옷을 챙겨야 할지, 선물은 뭘 준비해야 할지, 혹시 빠뜨릴까? 메모장을 열어도 마음이 복잡하다. 짐이라는 게 물건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시간, 현재, 감정들까지 싸서 가는 일이다. 그래서 가볍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가기 전엔 냉장고도 정리해야 하고, 집안 곳곳에 ‘부재중’이라는 낙인을 조용히 찍어야 한다. 집을 떠나는 일이 이렇게까지 감정적인 일이었던가, 새삼스레 깨닫는다.
그리고… 고소공포증이 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비행은 작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비행기만큼은 피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마음은 늘 출렁인다. 이륙 전 창밖을 보면 늘 드는 생각. “이거 말고는, 진짜 방법이 없을까?” 하지만 결국 비행기에 올라타고, 마음을 꼭 쥔 채 창밖을 바라본다. 낮은 하늘에서 먼 나라로 날아가는 동안, 무심히 흐르는 구름에 자신을 맡기며 생각한다. 이 모든 낯섦을 감수하고서라도 그곳에 가야 하는 이유가 뭘까. 그 답은 아직도 가는 길목 어딘가에서 헤매는 중이다. 한편으론, 그 구름 사이에 놓인 어딘가에서 ‘지금의 나’를 다시 마주할지도 모른다는 묘한 기대도 있다.
그래도 아이들의 들뜬 웃음은 발걸음을 당긴다. 그 작은 기대와 기쁨이 결국 몸을 움직인다. 우간다에서 가져갈 선물도 하나씩 챙겨본다. 볶은 깨, 수제 목걸이, 이곳의 커피 몇 봉지. 한국에선 아마 낯선 향일 이곳의 일상들. 누군가는 그냥 스쳐 지나갈 그 물건들이, 이곳의 시간과 감정을 담은 조각이다. 이 작은 조각들을 통해 그곳에 잠시나마 우간다의 공기와 햇살을 건넬 수 있기를 바란다.
아마 한국에 도착하면 실감이 조금씩 날 것이다. 익숙한 간판, 지하철의 안내방송, 밤늦게까지 반짝이는 편의점 불빛들. 그리고 그 틈에서 또다시 이방인의 마음으로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곳에서의 모든 풍경이 여전히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아니면, 낯선 손님처럼 다시 적응해야 할까. 잠시 머물다 다시 돌아올 이 여정. 그 안에서 무엇을 다시 보게 될까. 아이들은 분명 더 커져 있을 테고, 이 마음은 어쩌면 다시 이곳이 그리워질지도 모르겠다.
이동은 언제나 사람을 시험한다. 하지만 동시에 성장시킨다. 떠나는 길목에 선 지금, 아직 실감 나지 않는 감정을 안고 천천히 준비 중이다. 짐을 싸고, 마음을 다잡고, 그리고 다시 한번 자신을 꺼내 든다. 마치 익숙한 노트를 펼치듯. 한 페이지를 덮고 새로운 페이지를 시작하는 그 순간, 익숙함과 낯섦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다시 나를 쓴다.
기록하는비꽃
작가
우간다에서의 일상을 글로 씁니다. 『일상의 평범함을 깨우다』를 펴냈고, <포포포매거진 뉴스레터>에 삶을 기록 중입니다. 좋아하는 것을 덕질하며, 해낙낙하게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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