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쓸모 없는 것은 없다 -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2025. 05. 24by보미겨우리

나에게는 요상한 스트레스 해소법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몸을 쓰는 것이다 !

러닝이나 헬스나 뭐 다양한 종류의 운동들, 몸을 쓰는 활동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건강과 같이 특정한 목적을 두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 자체를 즐기는, 취미로 갖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조금 다른 맥락으로 몸을 사용하는 활동들을 한다.

 

살아가다 보면, 더군다나 모든 것들이 온라인으로 가능하고, AI가 나날이 발전해가는 이 시대에

예전에는 엉덩이 싸움으로 공부를 진득하게 해내는 사람들이 가장 성공하리라 믿던 세상에서

이제는 AI가 이것들을 해주기 때문에 잘 '질문'하는 사람이 성공하리라 믿는 시대가 된 이 순간에서 !

우리는 생각보다 하루의 대부분을 추상적인 일들로 하루를 채우게 된다.

생각, 감정, 논리, 기획, 상상 등 머리를 써서 n차원적인 무언가들을 치열하게 해내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다 한 번씩 우울하거나 무기력하거나 스트레스 받거나 그런 감정이 들 때에는 그냥 무작정 달리거나 계단을 오른다.

냅다 스쿼트를 해보기도 하고 오르막을 올라보기도 하고 정말 시간이 없을 때에는 폐활량 테스트라도 하듯이 숨을 한껏 참았다 몰아쉬어보기도 한다

그렇게 신체의 물리적 한계를 경험하고 나면 나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준 일들이 사사로워 보이기도 한다.

마침내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기도 하고.

 

가령 AI 시대에 각광 받는 직업이라든가, 연인 혹은 친구 사이의 일들이라든가 하는 일들로 우리는 애를 쓰며 살아가지만서도

사실 결국 모든 것은 1차원적인 우리 몸, 신체, 물리적인 것들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내가 숨을 쉬고, 잘 먹고, 잘 자고, 건강할 때, 그제서야 비교적 고차원적인 무언가가 의미를 갖게 된다.

매슬로우의 피라미드가 문득 떠오르는데, 이것을 배울 때에는 ( 머리로 받아들일 때에는 ) 그리 와닿지 않았는데

삶을 통해 이치를 깨닫고 나니 확실히 와닿는다. 머리에 들어온다는 느낌보다는 내 피부, 온 몸 구석구석 느껴진다고 하는 게 더 적절하겠다.

 

어렸을 때에는 ( 사실 요즘도 종종 ) 씻기 귀찮고, 화장하기 귀찮고, 영양제 챙겨 먹기 귀찮고, 아프면 힘들고

그런 순간들에 불평으로 시작된 실현 불가능한 상상들을 하곤 했다.

왜 몸이 있는 걸까 왜 신체가 있어서 나를 이렇게 불편하게 하고 내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거야 !

어차피 이 세상에서 돈을 만드는 것들을 가치를 만드는 것들은 다 머리로 하는 거잖아 !

그냥 영혼만 있으면 안 되는 거야 ? 왜 신체라는 게 구태여 생겨있는 걸까 !!! 와 같은 상상들

 

요즘에서야 그 이유를 여실히 느낀다. 세상에 쓸모 없는 것은 없다더니

내가 느끼는 쓸모가 정답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나에게는 그럴듯한 명분이 되어주고 납득의 근거가 되어주었다.

예전에는 하루 사냥을 나가고, 허기를 달래고, 추위를 피하는 등 1차원적인 활동들이 하루를 채웠다.

그런 1차원적인 필요들이 쉽게 충족됨에 따라 계속해서 더욱 고차원적인 것들을 추구하며, 더 높은 기준을 스스로에게 들이밀 때

신체로 인하여 억지로라도 잠시 멈추어 나를 돌보고, 마음의 에너지를 다 소비해버리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 같다.

스트레스로 인해 몸이 아픈 것도 예시가 될 것이고, 나처럼 몸을 사용하면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도 예시가 될 것이다.

 

나는 열심히 사는 사람이 아니다. 되려 열심히 사는 삶을 지양하는 사람에 가깝다.

되도록이면 여유롭게, 최소한의 치열함을 띠는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있었다.

이 바쁘다 바빠 한국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이러한 삶의 태도를, 지향점을 갖게 되었을까 추적해보자면,

 

초등학생 때 즐겨하던 테일즈러너라는 게임이 떠오른다.

빨리 나아가고자 대쉬를 사용할 수는 있지만 주어진 대쉬를 다 사용해버리면 탈진해버린다.

탈진해버리면 그 자리에 멈춰서서 나아갈 수 없고, 결국 대쉬를 사용하지 않는 플레이어들에게까지도 추월 당하고 만다.

 

그래서 항상 화면을 가득 채운 게임 맵의 길, 방향, 장애물들을 주시하면서도

곁눈질로라도 왼쪽의 작은 캐릭터 프로필 옆의 대쉬 게이지를 확인해야 한다. 내 캐릭터가 탈진해버리지 않도록 !

대쉬를 쓰지 않아도 본전이고, 대쉬를 살짝 사용하여 조금 더 빨리 나아가는 그 순간순간이 늘 플러스인 셈이다.

탈진하는 순간 마이너스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대쉬가 충분할 때 조금씩만 사용하여 조금 빠르게 가는 정도면 충분하다.

 

어쩌면 나는 그때부터, 그 게임으로부터 나만의 삶의 태도를 정립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오늘 갑자기 이 이야기를 나누고자 결심한 계기는 사실 별 거 없다. 그냥 어제 오늘 달릴 일이 있었다.

자발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 순간들이 꽤나 즐거웠다. 그래서 그 경험을 파고들어 코어를 들여다보고자 했던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체육 시간에 달리기 기록을 잴 때면 늘 선생님께 혼났다. 달릴 때 웃지말라고 !

나는 달리는 이 순간이 왜 그렇게 웃겼나 모르겠다. 미소가 아니라 깔깔 웃으며 달렸거든.

그때부터 그냥 나는 마냥 몸을 움직이는 게 좋았을 지도 !

 

 

 

보미겨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