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가 어느새 이렇게 사회적인 통념으로 자리잡았는지 혈액형 세대였던 나는 신기할 따름이다.
요새는 MBTI로 E냐 I냐로 자신의 사회성을 설명하고,
F인지 T인지로 자신의 감성을 소개하는 세태가 참으로 생소하면서도 반갑다.
단지 나이, 소속에 멈추지 않고 자신의 성격을 어떠한 유형이다,
라고 간결하게 설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자기소개가 편해질까.
오래 만난 친구가 오랜만에 집 근처에 일이 있어 얼굴이나 보자며 연락이 왔다. 언제나 오래 만난 친구들은 늘 정겹다.
오래도록 만나왔기 때문에 앞으로의 시간에 대한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친구는 오랜만에 임신마저 하고 왔기에 더더욱 반가웠다.
요 근래 근황을 얘기하다가 워낙 E의 면모를 가진 서로이므로, 넓어진 시야나 인간관계에 대해서 얘기가 나왔다.
함께 기관에 다니는 ‘아이 친구 엄마’와 함께 하는 활동을 도모하다가 엎어졌다며 그 당시 아쉬움이 많이 덜어진 객관적인 상황을 전달했다. 항상 친구는 그렇다.
군더더기 없이 느낀 감정을 전달한다. 나 역시 그런 경우가 많았고. 또한 아이 친구 엄마가 얼마나 친해지기 어려운지에 대해서 공감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러다 요새 영 애매하게 마음에 남던 이야기를 꺼냈다.
최근 친해진 A가족과 원래 친했던 B가족의 소개팅을 시켜줬다가 세 가족이 만나는 일도 늘었다,
그러나 우리는 사정상 못 만나게 되는 일들이 있어 A,B가족끼리 만나는 일이 잦아 오히려 소개시켜 준 우리가 소외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약간 조금 우울했다. 이야기를 들은 친구는 갸우뚱했다. 왜?
나는 친구의 이런 T적 면모를 사랑했다. 내가 과하게 감정에 치우칠 때,
넘치는 상상에 힘들어할 때 정반대에 서 있는 친구는 왜? 라는 질문을 던지곤 했다.
“왜? 그 사람들의 의도가 그렇지 않은데도, 그런 섭섭한 마음을 가질 수도 있구나.”
때로는 누군가의 순수한 질문이야말로 나를 돌아보게 한다.
깨끗한 아이의 질문이 때묻은 나를 항상 돌아보게 하듯이,
이 친구의 순수하고 정곡을 찌르는 말이야말로 나의 마음을 되돌아보게 한다.
욕심 많은 내가 이것도 놓치기 싫고, 저것도 놓치기 싫을 때.
항상 신선한 경험을 원하면서도, 또 안정된 관계에서 소외되기는 싫은
나의 애매한 다정함을 돌이켜보면 한없이, 또 한없이 작아진다.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는 싶고,
그렇기에 상황을 탓하고 남을 은근히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게 될 때 나는 이 친구에게 묻는다.
“T야, 내가 이런 상황에서 이런 감정이 든다.”
그럼 판관 포청천같은 T친구는 항상 얘기한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근데 그게 맞아?”
김작가
회사원
A만 인정받는 세상 이야기 속에서 B안을 끊임없이 만들고자 하는 김작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