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때때로 밀물처럼 쏟아지고, 또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나는 그 물결 사이에서 흔들거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작은 섬과 같다.
몽생미셸(Mont-Saint-Michel)은 그런 나와 많이 닮았다. 세상과 단절된 듯하면서도, 또 묘하게 연결된,
외로운 섬.
파리에서 몇 시간을 달려 도착한 몽생미셸은, 사진보다도 훨씬 더 고요하고 웅장했다.
모래와 바다가 맞닿은 경계 그 위에, 오래된 돌 건물들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몽생미셸은 8세기, 아브랑슈의 주교가 꿈속에서 천사 미카엘의 계시를 받은 후 세워진 수도원이다.
하루에 두 번씩 밀물과 썰물에 따라 육지와 단절되었다 다시 이어지는 이 신비한 섬은,
천 년 넘게 순례자들과 여행자들의 발길을 끌어왔다.
사람들은 그곳을 “기적의 섬”이라 부르지만,
나는 그곳에서 기적보다는 쓸쓸함을 견뎌낸 단단한 아름다움을 보았다.
사실 프랑스에서의 삶은 아직은 나에게 많이 낯설다.
불어는 아직 내 입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말 대신 웃음으로 넘기는 순간들도 많다.
온통 프랑스인 들만 가득한 장소에 혼자 덩그러니 있었던 적도 있었고, 마켓 계산대 앞에서 말이 통하지 않아 쩔쩔맸던 날도 있다.
아직도 나는 내 삶의 중심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느낌을 받곤 한다.
몽생미셸의 돌계단을 오르며, 그 뒤로 지는 태양을 바라보다 문득 생각했다.
세상과 떨어진 그 섬이, 그렇게나 많은 순례자들을 끌어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왜 외로운 섬을 찾아오는 걸까.
아마 그곳이 우리의 삶과 비슷하기 때문이 아닐까?
밀물로 고립되었다가도, 결국 썰물이 지나가면 다시 육지로 이어지는 것처럼,
오늘의 태양이 지면 내일의 태양이 다시 뜨는 것 처럼.
삶도 고립과 고난의 연속이 아니라, 기다림 뒤에 오는 아찔한 환희로 가득 차 있음을
그 섬은 묵묵히 보여주고 있다.
결국, 외로움은 나를 무너뜨리지 못했다.
내 삶은 완벽하지 않지만 인생은 미완성 그 자체로도 아름다울 수 있다.
투박하지만 단단한 몽생미셸 처럼, 앞으로도 나라는 사람을 단단하게 지탱 할수 있는 힘을 잃지 않기를
언젠가, 나 역시 누군가에게 기적처럼 고요한 섬이 되어 줄 수 있기를 조심스래 기도하며
나는 오늘도 천천히 내 몫의 계단을 올라가 본다.
프랑스의 소피
이메일 ㅣ ala.adj227@gmail.com
인스타 ㅣ @madame_jojo__
소피
프리랜서
글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것을 사랑하는 프랑스의 소피 입니다.
나쁜 선택
영화 <비커밍 아스트리드>는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으로 유명한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는 아스트리드가 작가가 되기 전 겪은 굵직 사건들을 보여주는데, 여기서 그는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같은 손만 뻗으면 닿는 선…
잠시, 한국으로 가는 길목에서
두 달간 한국에 다녀올 예정이다. ‘잠시’라는 단어를 붙였지만, 마음속 무게는 잠깐이 아니다. 이곳, 우간다에 익숙해진 몸과 마음을 다시 움직여야 한다는 것. 그 자체가 작은 이사 같고, 중형 프로젝트처럼 느껴진다. 떠날 채비를 한다는 것은 단순한 여권과 항공권, 짐 가방 이상의 일이다…
(프랑스의 소피) 다리의 달 Le mois des ponts
가정의 달 5월, 프랑스 또한 한국과 비슷하게 한 달 내내 크고 작은 행사가 가득하다. 5월 1일 노동절(Fête du Travail)을 시작으로, 8일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기념일(Victoire 1945), 25일은 어머니의 날, …
생각만 해도 슬픈 음식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 장엄한 저음의 목소리가 안개처럼 깔렸다. 오디오북 속의 단테도 파를 써는 나도 지옥의 문을 지나고 있었다. 눈물 콧물 샘을 활짝 개방한 채 파와 사투를 벌이는 배경 음악이 단테의 <신곡&g…
어버이날을 모르는 아이들과 보낸 5월 8일
프랑스의 5월 8일은 유럽 전승 기념일이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나치 독일이 연합국에 항복한 것을 기념하며 휴일로 지정했다. 우리나라가 일본이 항복한 8월 15일을 광복절로 지정해 기념하는 것처럼 말이다. 공휴일 답게 아이들은 느지막이 일어나 만화영화를 보았다. 우리집에선&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