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여섯 시. 아직 해는 뜨지 않았지만, 집 안에는 이미 작은 움직임들이 일기 시작한다. 식탁 위엔 전날 밤 미리 준비해 둔 간식 반찬 통이 놓여 있고, 부엌에선 구수한 된장국 냄새가 퍼진다. 아이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와 한 손에 칫솔을 든 채 바닥에 널브러진 양말을 찾는다. 학교는 집에서 차로 30~40분 거리에 있고, 등교 시간은 여덟 시. 아이들의 리듬에 맞추기 위해 집 안의 모든 기계가 조금씩 빨라지고, 어른의 감각도 분주하게 깨어난다. 한나절 분의 에너지를 쏟아붓는 듯한 한 시간. 아침 준비, 간식 점검, 물병 채우기, 숙제 확인, 교복 점검, 준비물 체크. 작은 실수 하나가 아이의 하루를 어그러뜨릴 수도 있다는 조바심에 손길은 분주하고, 눈은 바삐 주변을 살핀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크레파스 한 자루에도 마음이 걸리고, 식탁에 흘린 국물 자국에도 손이 먼저 움직인다. 어느새 온몸이 하루치 노동을 마친 듯하다고 할까? 아이들이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외치며 현관문을 나서는 시각은 6시 50분. 그때까지 이루어지는 아침 풍경은 마치 먼 항해를 앞둔 배의 마지막 준비처럼 긴장감 있고, 동시에 익숙하다.
출발 전 마지막으로 거치는 의식이 있다. 포옹, 뽀뽀, 그리고 짧은 기도. “오늘 하루도 평안하게, 기쁘게 지내자.” 손에 남은 체온, 볼에 닿았던 입술의 따뜻함, 나직이 속삭였던 말들이 공기 중에 머물다 천천히 사라진다. 아이들에게는 그것이 보호막처럼 남고, 집에 남겨진 나에게는 그 순간부터 갑작스러운 정적과 마주하게 된다. 아이들의 발소리가 현관을 벗어나고 나면, 집 안엔 고요가 내린다. 그러나 그 고요는 낭만적이지 않다. 식탁 위엔 치운 듯 치우지 않은 그릇이 남아 있고, 방마다 흩어진 교복 조각들, 세면대 주변의 물방울, 냉장고 문에 붙은 메모지 한 장까지, 모든 것이 뒤엉킨 잔해처럼 시야를 채운다. 새벽의 전쟁터를 막 통과한 듯한 그 풍경은, 하루가 던지고 간 숙제 같다. 하지만 그 순간,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은 어지러운 부엌도, 청소가 필요한 거실도 아닌 침실이다. 몇 분 전까지 정리되어 있던 이불을 다시 펼치고, 그 안으로 몸을 뉜다. 이불속은 또 하나의 세계다. 따뜻하고 조용하며 아무런 성과를 요구하지 않는 유일한 공간. 움직일 필요도 없고, 대답할 필요도 없고, 반응하지 않아도 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느긋한 안식처.
정리를 미루지 못하는 내 성격에는 이 시간이 작은 혁명처럼 다가온다. 싱크대에 쌓인 그릇, 바닥에 떨어진 휴지 한 장, 책장서 반쯤 빠져 있는 책 한 권까지 전부 신경이 쓰인다. 무언가 어지럽혀져 있다는 사실이 머릿속을 끊임없이 긁는다. 평소라면 이불을 뒤집어쓴 채로도 “이건 도저히 안 되겠다”라며 벌떡 일어나 청소기를 돌렸을 거다. 하지만 그 성급함이 마음을 더 지치게 만들고, 하루를 더 길고 복잡하게 만든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일부러 정리를 미룬다. 스스로 허락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 한 시간을. 그 시간엔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고, 창밖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다가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낸다. 손이 닿는 곳에 스마트폰이 있어도, 일부러 꺼내지 않는다. 뭔가를 보거나 듣기보다, 그냥 존재하는 상태로 머무는 것이 이 시간의 유일한 역할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아침에 했던 한마디를 떠올리며 피식 웃기도 하고, 어제저녁 괜히 짜증 냈던 일이 떠올라 마음속으로 ‘미안해’를 중얼거리기도 한다. 그렇게 마음은 과거와 미래, 그리고 아주 조금의 현재 사이를 천천히 떠다닌다.
이불속에서 머무는 이 시간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다. 삶의 중심을 되찾는 고요한 의식이다. 어떤 이에게는 커피 한 잔이 그 역할을 하고, 또 다른 이에게는 아침 산책이나 짧은 명상이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러나 어떤 이에게는 이불속에서의 한 시간이 그것이 된다. 아무도 보지 않고, 보이지 않으며, 묻지 않고, 말하지 않는 이 시간이야말로 온전히 자신을 위한 시간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 시간에 집안일을 조금 해두면 하루가 훨씬 수월하지 않을까?” 그 말은 맞다. 하지만 그 시간을 건너뛰고 하루를 시작하면, 어딘가 마음이 비어 있다. 고요의 시간을 지나치면, 하루 전체가 누군가의 삶에 끌려가는 기분이 든다. 리듬을 되찾기 위해서는, 누구의 요구도 없는 그 한 시간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정지해 있는 한순간이 있어야 비로소 남은 시간을 제대로 살아낼 수 있다. 이불속에 누워 있는 이 한 시간이 없었다면, 많은 날이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다정함을 다정하게 느끼지 못하고, 사랑을 주는 일조차 피곤하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소음처럼 들리고, 누군가의 부탁이 짐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요히 숨을 고른 뒤 다시 맞이하는 세상은 다르다. 싱크대의 설거지도, 거실에 널린 옷가지도 더 이상 짐이 아닌 ‘나의 생활’로 보인다. 이불 밖으로 나가는 발걸음은 그래서 가볍다. 소란한 하루로 들어가기 직전, 가장 조용하고 단단한 그 시간. 누구도 알지 못하지만, 하루 전체를 지탱하게 하는 한 시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회복이 일어나는 그곳에서, 삶은 다시 시작된다. 이불 속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기도가 조용히 피어난다. 그리고 마음속에 하나의 문장이 새겨진다.
“오늘 하루도 잘 살자.”
기록하는비꽃
작가
우간다에서의 일상을 글로 씁니다. 『일상의 평범함을 깨우다』를 펴냈고, <포포포매거진 뉴스레터>에 삶을 기록 중입니다. 좋아하는 것을 덕질하며, 해낙낙하게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