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중학생이 된지 꽉 채운 2개월이 지났다. 지난 3월부터 학원 스케줄이 더 바빠지면서 아이의 수면 시간을 잘 관리하는 것이 몹시 중요해졌다. 아이는 초등학생 시절엔 9~11시간을 잤는데, 요즘은 7~9시간을 자고 평일 기준 평균 7시간 30분~8시간을 잔다. 학원 숙제가 많아서다. 엄마에게 ‘돌아서면 밥’이 있다면 아이에게는 ‘돌아서면 숙제’가 있는 모양새다. 밥이나 숙제나, 아무리 본인의 선택에 수반되는 일이라지만 시지프스의 바위처럼 끝없이 굴러오는 과제를 반복해 쳐내는 것은 꽤나 지긋지긋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나 때는 어땠더라?’
요즘 들어 나는 부쩍 자주 아이와 비슷한 나이였던 그 시절 나의 일상을 복기한다. 만 13세의 권장수면량은 8~10시간. 최소 권장 수면량을 아슬아슬하게 채우거나 미처 채우지 못하는 데다 평일엔 운동할 짬도 제대로 나지 않는 하루하루를 보내며 과연 아이가 이렇게 사는 게 맞는지, 사실은 정답이 없는 이 문제의 답을 어디서라도 구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이에 관한 문제라면 각계의 온라인 전문가부터 챗 GPT에 이르기까지 답을 얻을 수 있는 곳이 많은 시대다. 하지만 나라는 엄마가 나의 아이가 가진 욕구를 고려하여 나와 아이에게 모두 이로운 답을 내리기 위해서는 결국 우리 자신에게 물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너는 지금 괜찮은지, 내 생각은 어떠한지, 과거의 나는 어땠는지 묻고 답하는 그 과정에 우리만의 답이 있을 테니.
중학생 시절 나는 보통 밤 9시만 되면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꼭 자지는 않더라도 9시 이후에는 방에 들어가 있는 것이 이로웠다. 엄마는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큰 애’인 나와 동생이 밤이 늦도록 거실에 나와 있는 것을 싫어하셨다. 그러다 보니 나는 보통 9~10시면 잠을 자곤 했는데, 그 덕분인지 중1 때까지만 해도 친구들보다 머리 하나 크기 이상 작았던 내가 중학교 내내 급격히 키가 크기 시작하더니 고등학생이 되었을 땐 제법 큰 축에 속하게 되었다. 사실 초등학생 시절이라고 해서 일찍 잠을 자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찌 되었든 키가 큰 건 엄마 덕분이라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일찍 자던 나도 시험 기간 약 한 달 동안에는 새벽 1시까지 공부를 하고 잠이 들었는데,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었던지라 몸은 피곤해도 마음이 괴롭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시간까지 공부를 하지 않고 잠을 자는 것이 더 마음 불편한 일이었다.
당시 나는 동네 보습학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매일 가기는 했지만 학원 숙제는 거의 없었다. 아침에 학교 가고 오후에 하교해 친구와 놀거나 집에서 쉬다가, 저녁을 먹고 학원에 다녀와 약간의 학교 숙제를 한 뒤 씻고 자는 그런 나날. 원체 운동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기에 몸을 움직이는 건 학교 체육 시간이 전부였고, 여가시간엔 대체로 책과 만화책을 보거나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었다. 그러고 보니 가끔씩 학원이 끝난 시간부터 자정이 넘도록 친구들을 만나던 때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우리는 학교 옆 길가에 서서 차마 가족에게도 말하지 않는 긴 이야기를 나눴더랬다. 그러다 아주 가끔 유성우가 떨어지는 날에는 동네 공원이나 친구네 아파트 주차장에 신문지를 깔고 라면을 베개 삼아 누워 함께 별을 보았다. 당시 아빠는 너무 바빴고, 엄마는 내게 별 관심이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돌이켜보니 그 시절 나는 언제나 불안정했고 자주 우울하긴 했지만 대신 자유로웠다.
친엄마와 친아빠와 함께 살고, 먹고 살 걱정이 없으며 본인이 원하는 학원 여러 개를 다니고 있는 아이의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나보다 훨씬 안정된 환경에서 살고 있다 생각해온 아이의 일상이건만 어느 한 귀퉁이를 슬그머니 들춰보니 이것참, 은근히 갑갑하다. 아이는 엄마와 아빠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아이의 미디어 사용 시간은 상호 약속 하에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아이의 위치는 GPS를 탑재한 앱으로, 최근에 비로소 구입한 스마트폰 사용 내역은 휴대폰 제조사의 촘촘한 시스템 안에서 실시간으로 나에게 속속들이 공유된다. 아이는 과거의 나와 달리 경제적 부담감을 안고 있진 않지만 한 달에 자신에게 투입되는 학원비가 얼마이며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그 누적 금액을 계산하면 꽤나 큰 금액이 산출된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다. 스스로가 원해 보내달라고 한 학원을 다니는 것이지만 취준생이 그토록 바라던 직장에 다니게 되었다고 해서 출근과 일이 마냥 행복한 것은 아니듯 아이 역시 숙제는 싫고 가끔 학원도 가기가 싫단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어쩔 수 없이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차라리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했던 내가 더 행복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아이의 안전과 사생활, 현재와 미래의 가능성 사이를 저울질하며 선택해온 최선의 것들이 과연 정말로 최선인가 의심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학원 다니랴, 숙제하랴 많이 바쁘지?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 땐 꼭 말해줘야 돼. 꼭 학원을 다녀야 공부를 할 수 있는 건 아냐.”
캄캄한 밤, 여느 때와 같이 학원에서 돌아온 아이를 끌어안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아이가 답했다.
“힘들어. 그런데 뺄 학원이 없어. O은 내 진로와 연결되는 거니까 다녀야 하고, ㅁ은 재미있고, 또 △도 재미있는 편이야. ☆은 재미가 없긴 한데, 필요하니까 해야지.”
아이는 내가 사생활 침해 논란이 있는 GPS 탑재 앱을 깔기로 했다 말했을 때 그리고 휴대폰 제조사에서 미성년자인 너의 휴대폰 사용 내역을 공유해 준다 말했을 때도 조금 불편해하고 고민을 했지만 이내 받아들여주었다. 나는 아이의 그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엄마를 사랑하는 아이의 다정함에 기대어 무리한 요청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마음 한구석으로 늘 조심스럽다. 아이는 벌써 중학생. 사춘기 청소년이다. 불안했을지언정 그 시절의 나를 한층 더 자라게 해주었던 자유를, 아이에게 늘 촉각을 세우고 사는 나는 제대로 선사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한없는 어려움을 느낀다. 나를 남의 자식 대하듯 대하던 엄마의 태도가 필요한 순간이 예상치 못하게 내 인생에도 찾아왔는데, 아무래도 나는 엄마처럼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새엄마와 친엄마의 중간 어디쯤의 태도를 취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는 아직도 내 눈에 귀염뽀짝한 아들의 안전이 늘 걱정이고,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건 허용할 수 없으며, 아들이 원하는 진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고 싶다.
아이가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지 여전히 그 답은 모르겠지만 혼돈의 도가니탕 같은 이 글을 마치는 지금 딱 한 가지는 알겠다. 아이는 한동안 이렇게 살기로 스스로 결정을 내렸다는 것. 내가 해야 할 일은 그게 맞는지 틀렸는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응원하는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누가 뭐라 하든 아이는 정했고, 나는 지지할 것이다. 이제 그것만 생각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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캥거루
프리랜서
원가족 안의 나를 다시 들여다보며 더 단단한 오늘을 만들어가는 캥거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