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투우카함니다. 생일 투까합니다. 쨔랑하는 옴마의 생일 뚜까합니다.” 자주 꺼내 보는 영상 중 하나. 양손을 가지런히 모아 목청껏 노래를 부르는 아이를 보며 에너지를 충전한다. 촛불을 끄다 못해 케이크 위로 침을 분사하는 장면은 수백 번 돌려 보아도 지루할 틈 없는 깔깔 버튼. 과거를 양식 삼아 오늘을 산다.
먹기 싫은 부분만 쏙 남겨 두고 “엄마 먹어” 입에 쏙 밀어 넣어도. 네가 흘린 음식을 무의식적으로 주워 먹어도 맛있기만 하다. 콧물을 그렁그렁 달고 침을 잔뜩 묻힌 입술로 달려오는 너에게 뽀뽀를 퍼붓는다. 덕분에 우리는 세균도 함께 공유하고 병원도 세트로 간다. 너는 물약 나는 알약. 항생제의 형태와 증상의 진도에 차이만 있을 뿐.
질량보존의 법칙에 따르면 보이지 않는 모든 것에도 총량이 있다는데. 무한대로 증식하는 너를 향한 사랑은 애초에 측정 불가한 종류였다. 내 모든 경계선을 지워버리는 존재를 통해 나는 너른 벌판이 되어간다. 허기를 대충 때우는 점심을 지나 네가 먹을 제대로 된 한 끼를 차리는 저녁. 네가 아니었다면 제철 식재료가 무언지 어느 마트가 더 저렴한지가 무슨 상관일까.
잠 빚에 시달려 도통 일어나지 못하는 주말엔 “배고프지만 엄마 피곤하니까 안 깨웠어” 헤실헤실 메추리알 같은 네 볼이 내 위장을 채운다. 자식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지 않다는 말을 비로소 체감한다. 이전의 나라면 좋아하지도 먹지도 하지도 않았을 일을 자연스레 따른다. 아직도 우린 보이지 않는 탯줄로 연결되어 있는 걸까. 너를 만난 이후의 내 삶은 이전의 나를 탈피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없던 비위가 생기고 타인의 시선에 무덤덤해졌다. 널 위한 내일의 코디는 전날부터 고심하지만, 나는 단벌 신사 마냥 드라이클리닝 비용을 떠올리며 색색의 겨울 외투도 옷장에 박제해 둔다. 빵집에서 찹쌀떡과 생 도나츠를 고르는 어르신 입맛인 네가 기어코 남기고야 마는 빵을 해치우며 입맛이 바뀌었다. 팥을 좋아하면서도 세 마리에 이천 원인 붕어빵은 슈크림 두 개, 팥 하나를 고수하는 너라는 어린이를 사랑한다.
엄마는 꼬리가 좋아 머리가 좋아 매번 똑같은 질문 다음에 등장할 “엄마 한입”. 갸륵한 효심보다 기름으로 반질반질해진 입술로 날아드는 뽀뽀가 달콤해 붕어빵을 기다린다. 아니 너와 손잡고 학교 앞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그 산책을 기다린다. 입맛도 비위도 까다롭던 이전이 전생처럼 까마득하다. 못 먹을 것도 못 할 것도 없다. 너와 함께라면. 한 톨도 남김없이 알뜰하고 든든하게 이 시간을 비축해 두어야지. 내 둥지에서 네가 훨훨 날아가면 나도 담대하게 창공을 날아오르도록 차곡차곡.